최병용 칼럼니스트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일명 SKY대학의 2019학년도 신입생 200명을 설문 조사하니 아버지 학력이 4년제 대졸 이상이 77.5%, 어머니 학력이 4년제 대졸 이상이 71.5%라고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부모 양쪽이 모두 4년제 대학 졸업 이상인 경우는 61%, 부모 학력이 모두 고졸 이하인 경우는 합격자가 한 명도 없었다. 부모의 학력에 따라 명문대 진학률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보고 “학력의 대물림 현상이 뚜렷해졌다” “개천에서 용이 안 난다”고 한다.

필자가 15년 전 강남의 한 중학교에 근무할 당시 학급의 부모 직업군을 조사했더니 30명 중 15%가 부모 중 한쪽이 의사, 30%가 교수, 교사 또는 법조인, 30%가 대기업 팀장급, 30%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자영업자, 기타 등이었다. 모두 사교육을 받지만 상위권은 늘 고학력 부모의 자녀들이 차지했다. 1980년 대학 진학률이 24%였던 시기에 대학을 다닌 두뇌를 가진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고, 전문직이나 대기업에 근무하며 경제력을 쌓아 자녀교육에 관심을 가질 충분한 여유가 있는 부모 밑에서 성장하는데 공부를 못하는 것이 이상하다.

해방 이전에 태어난 우리 부모 세대는 대부분 농부였고, 가난 탓에 공부할 여건이 안 돼 지능을 알 방법이 없었다. 이후 태어난 7080세대에서 가난하지만 우수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공부로 계층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나왔다.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과 삶의 질이 바뀌게 되며 중산층으로 대거 자리를 잡았다. 이후 태어난 세대는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을 받아 개천에서 용이 잘 안 나오게 된 게 현실이다. 해외입양간 아이가 환경의 영향으로 성공하는 경우에서 보듯이 예외인 경우도 10% 정도는 존재한다.

퇴근 후 집에서 책이나 연구논문, 업무 서류에 몰입하는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와 매일 TV를 껴안고 살며 책 한번 안 읽는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는 차이가 난다. 고학력 부모는 공부하는 방법을 알고, 자녀들의 학습 방법이나 공부 방향을 지도해주는 게 가능하다. 이런 부모의 훈육을 받아 명문대 진학 비율이 높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고학력 부모의 자식이 고학력자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공부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교육학에서는 상식으로 통한다.

공부를 잘 해 본 경험이 없는 부모는 자식에게 학원이나 과외를 붙여 주고 부모로서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공부하라고 닦달만 하고 학원과 과외를 시켜줘도 공부를 못하는 것은 자녀가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치부한다. 공부가 유전적 요인이 중요한 타고난 소질이란 걸 무시하고 재수, 3수를 시키니 아이 마저 불행해진다. 스포츠 스타의 자식들이 대를 이어 축구, 농구, 야구에서 활약하고, 연기자의 자식들이 또 연기자의 길을 걷고, 가수의 자식들이 유명한 가수가 되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공부는 유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하버드 신입생의 압도적 숫자가 유태인이고, 1% 이내의 초고소득을 가진 부모의 자녀가 많다는 것을 보면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1980년 중반 33%였던 대학 진학률이 현재는 83%에 달한다. 수많은 대학 중에 차별화를 위해 명문대에 우수한 학생이 몰릴 수밖에 없다. 고학력 부모들이 자식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사활을 걸며 경쟁하니 SKY대 진학률이 높다. 게다가 경제력, 정보력을 가진 고학력 부모들에게 유리한 수시•학종 제도 탓에 돌연변이로 우수한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한 아이들까지 명문대에 입학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 진학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공부도 소질이다. 공부에 소질이 없다면 자녀가 행복하게 인생을 살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 자신의 인생을 살도록 도와줘야 한다. 공부에 소질 없는 자녀를 학원과 사교육에 맡긴다고 성적이 좋아지지 않는다. 물을 먹고 싶지 않은 말을 물가에 데리고 가는 건 시간낭비다. 자녀의 적성에 맞춰 행복한 진로를 찾아가도록 돕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진정한 역할이다. 가장 어려운 게 자식 농사다. 아무리 공을 들여 잘 키운 농사도 태풍 한번 불어오면 한 번에 망치게 된다. 공부 잘해 검사가 되고 장차관이 됐다며 집안의 자랑이었던 사람이 성범죄자로 전락하는 것을 보면 명문대를 보내고 공부를 잘 했다고 자식 농사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문대의 노예가 되어 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이 안타깝다. 명문대를 졸업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하는데 점점 멀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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