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정부는 2017년 12월 자사고에 지원할 경우 일반고에는 지원을 하지 못하도록 이중지원을 금지하는 조항을 추가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자사고가 전기선발과 이중지원으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선점하는 탓에 고교서열화 문제 등 공교육의 질을 악화시킨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중 자사고와 일반고에 학생이 이중지원을 못하도록 한 조항이 위헌이라 판결했다. 이는 자사고의 ‘우수학생 선점권’을 헌재가 인정한 셈이어서 자사고 폐지를 추진하던 정부의 교육 정책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교육의 질이 좋은 자사고에 우수한 학생이 몰려 공교육의 질이 악화 됐으니 자사고의 수준을 끌어내려 평준화를 시키자는 발상 자체가 애당초 무리수였다. 공부에 소질을 타고 난 학생이 일반고보다 공부하기 좋은 자사고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권리를 빼앗으려 한 것이다. 학교의 선택은 전적으로 학생과 학부모에게 맡겨야 맞다. 정부가 강제해서는 안 되는 기본권이다. 예체능은 타고난 소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공부에는 타고난 소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외국에서도 우수한 명문 사립고들이 인재를 많이 배출한다. 국가차원에서도 장차 나라를 이끌어 갈 만한 인재들을 배출하도록 지원한다. 세계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고급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국가와 사회의 의무이자 책임인데 우리는 국가가 하향평준화에 앞장서고 있다. 심지어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고위직 자녀들은 대부분 외고, 특목고, 과학고, 자사고, 심지어 해외유학을 보내는 비율이 일반국민에 비해 훨씬 높다. 국민들은 서민 자녀의 계층사다리를 걷어차 기득권층의 자리를 공고히 하려는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다양한 학교, 다양한 형태의 수업방식을 사교육 조장이라는 단편적인 잣대로 획일화하여 적폐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 공교육의 질이 악화된 이유를 자사고 탓으로 돌리는 것도 비겁하고 무책임하다. 정부주도의 일반고의 획일적인 교육체계로는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인재 수요를 맞추기 힘들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진학하고 싶은 학교가 남아 있어야 교육의 획일화로 인한 전체적인 수준 저하를 막을 수 있다. 수준이 천차만별인 아이들이 자기 수준에 맞게 수업 받을 수 있는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 특색 있는 커리큘럼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국가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인재들을 길러내는 자사고도 많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공부에 소질이 없으면 자사고에 가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 돼 자사고가 금수저를 위한 학교는 아니다.

고교평준화가 시행되기 전에는 일반고 중에도 명문고가 많이 있어 학부모나 학생의 교육 수요를 흡수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일반고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어도 도무지 면학분위기가 살아나지 않아 내신의 불리함을 감수하며 자사고, 특목고를 선택하는 아이들도 많다. 공부에 소질 있는 우수한 아이들이 모이면 집단지성을 발휘해 더 큰 교육적 성과를 이뤄낸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 교육열과 우수한 두뇌를 가진 자원이다. 인재를 길러내는 학교가 많아지고 수업방식이 존중돼야 한다. 일반고의 수준을 자사고 수준에 맞게 올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사고란 이름만 갖고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는 학교는 학부모나 학생의 외면으로 자연적으로 도태된다. 점수표로 채점해 교육감이 폐지를 강제할 일이 아니다.

공교육의 질이 악화된 근본원인을 찾아 일반고 수준을 높일 방법부터 찾길 바란다. 노력하지 않는 교사가 아무런 제약 없이 근무하는 환경부터 고쳐야 한다. 일반고 교사의 수준이나 수업 분위기가 자사고에 미치지 못하니 아이들이 일반고를 외면하는 현실을 알아야 한다. 교사들의 손발을 꽁꽁 묶어 학생지도를 포기하게 만든 교육당국의 정책이 공교육의 질 악화를 초래했다. 임기 4년의 선출직 교육감이 자기의 교육철학을 시험하려 만든 학생인권조례가 공교육 붕괴의 출발선이다. 교육감이 바뀐다고 교육정책을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바꿔선 안 된다.

공부를 하고 싶지 않고, 공부에 소질 없는 학생은 그들 나름대로의 철학과 삶의 방식이 따로 있다. 이런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자신들의 원하는 삶을 살도록 다양한 진로를 열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반면에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학습여건을 국가에서 보장해야 한다. 난 사람보다 된 사람, 든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이 필요하다. 국제적인 인재를 길러 낼 수 있는 상향평준화 교육에서 해법을 찾아야 공교육도 같이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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