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제4차 세계일본군위안부 기림일 맞이 나비 문화제’를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진행 한 가운데 김복동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가 참석 해 위안부 주제로 다룬 공연을 보고 있다. ⓒ천지일보 DB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제4차 세계일본군위안부 기림일 맞이 나비 문화제’를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진행 한 가운데 김복동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가 참석 해 위안부 주제로 다룬 공연을 보고 있다. ⓒ천지일보 DB

28일 밤 10시 41분 신촌 세브란스병원서 별세

약자에 대한 사랑, 한 평생 ‘기부’로 몸소 실천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복동 할머니가 향년 93세로 28일 밤, 하늘로 떠났다. 위안소에 끌려간 지 79년, 피해 신고 27년에도 다 풀지 못한 한을 안고 눈을 감았다.

수년간 암 투병 생활을 해 온 김 할머니는 최근 건강이 크게 나빠져 지난 11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입원 17일만인 28일 오후 10시 41분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병상에서 숨을 거뒀다.

김 할머니의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조문은 29일 오전 11시부터 가능하다.

경남 양산 출신인 김 할머니는 14살에 일본군에 붙잡혀가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경로를 따라 끌려 다니다 22살에 돌아왔다.

김 할머니는 1992년 1월 ‘정신대 신고전화’가 개통된 지 넉 달 만에,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피해 사실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어렵게 피해 사실을 폭로한 김 할머니는 나라 안팎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그해 8월 서울에서 열린 제1차 아시아연대회의를 시작해 이듬해 오스트리아 빈 세계인권대회 등에 나선 김 할머니는 일본의 역사적 만행을 알렸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로서 아픔을 안고 있으면서도 기부도 멈추지 않았다.

2015년에는 분쟁 지역 피해아동 지원과 평화활동가 양성에 써달라며 평생 모은 돈 5000만원을 ‘나비기금’에 기부했다. 나비기금은 이 돈으로 ‘김복동 장학기금’을 만들었다. 김 할머니는 국제 언론단체가 선정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영웅’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수요집회에 참석해 참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천지일보 DB
수요집회에 참석해 참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천지일보 DB

“나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지만, 그래서 지금도 매주 수요일이면 일본대사관 앞에 서서 우리에게 명예와 인권을 회복시키라고 싸우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지금 세계 각지에서 우리처럼 전시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여성들을 돕고 싶습니다. (201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나비기금 설립 기자회견)”

김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본 정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재일동포 아이들을 유독 챙겼다. 2016년부터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재일조선학교 학생 6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김 할머니는 지난해 11월 22일 병세가 악화돼 신촌 세브란스 병실에 입원한 가운데서도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보내달라며 3000만원을 더 내놓았다.

“재일동포들 힘내세요. 내 전 재산을 털어서 다달이 후원하겠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돼 주세요.”

지난해에는 공익사단법인 정(이사장 김재홍·김용균)이 제정한 ‘바른의인상’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당시 공익사단법인 정은 선정 이유에 대해 “김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아픔을 안고 있으면서도 거의 전 재산을 후진교육을 위해 기부했으며 평화와 통일의 신념과 한일 과거사에 대한 바른 역사관을 전파시켰다”고 밝혔다.

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마다 거리로 나가 학생들을 만나고, 시민들을 만나 ‘다시는 비극적인 일이 없는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외쳐왔다. 일본에서 오는 활동가들을 향해서는 힘내라고 격려하며,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향해서 전쟁이 없고, 다시는 성폭력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세상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호소해왔다. 평양을 그리워하던 김 할머니는 한반도의 통일도 간절히 염원했다. 

한편 어제 오전에도 ‘위안부’ 피해자 이 모 할머니가 향년 93세를 일기로 별세하는 등 하루 동안 할머니 두 분이 잇따라 숨지면서, 정부에 등록된 생존 ‘위안부’ 피해 여성은 이제 23명으로 줄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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