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곳간] 조선시대, 장남이 유산 가장 많이 받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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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2018.12.12
ⓒ천지일보 2018.12.12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 속
아들딸 균등한 상속 기록​​​​​​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재산상속에 대한 문제는 참 복잡하다. 남녀 차별이 없어진 세상이겠지만, 정작 상황이 맞닥뜨려지면 장남 중심으로 분할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원래부터 장남이 가장 많이 유산을 물려받았을까?

◆경국대전 속 상속 규정

‘상속’이란 일정한 친족 관계가 있는 사람 사이에서, 한 사람이 사망한 후에 다른 사람에게 재산에 관한 권리와 의무의 일체를 이어 주거나, 다른 사람이 사망한 사람으로부터 그 권리와 의무의 일체를 이어받는 일을 뜻한다.

조선시대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 보면, 아들딸 구별 없이 모든 형제에게 재산을 똑같이 나눠 주라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 각 가정의 일을 국가가 간섭할 수는 없었다. 이에 집마다 재산을 놓고 형제들끼리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대왕은 신하들에게 전교를 내렸다. 내용에 따르면 “부모의 재산을 다 차지할 욕심으로, 혼인한 여자 형제에게 재산을 나눠주지 않는 자를 엄하게 처벌하라”고 기록돼 있다. 이에 조선의 여성들은 당당히 자기의 재산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조선 후기부턴 장남 중시

재산상속은 보통 분재기(分財記, 가족이나 친척에게 나누어 줄 재산을 기록한 문서)라는 형식으로 나눠 줬는데, 오늘날과 다른 것은 당시에는 노비를 재산으로 분류해 기록했다.

고려 이전의 재산상속에 대한 규정은 자세히 찾을 수 없으나, 조선시대 경국대전 형전에는 ‘개인노비’에 대해 기록돼 있다.

내용에 따르면 ‘분배하지 못한 노비는 아들딸이 살았거나 죽었거나 간에 나눠준다. 평균 분배가 되지 않는 수는 본 아내에서 난 자녀에게 골고루 나눠 주고 만일 우수리로 남는 수가 있으면 가계를 계승하는 아들에게 주며 그러고도 나머지가 있으면 손위와 손아래의 순서를 따라 준다’고 기록돼 있다.

즉 당시 재산 분할은 자식에게 균등하게 이뤄졌음을 알려준다. 단, 서얼은 차별을 뒀다.

어머니가 자기 친정에서 받은 땅이나 노비는 그가 낳은 자식에게만 상속됐다. 기록에 따르면 가계를 계승한 자에게는 1/5을 더 주고 양인 첩의 자식에게는 본 아내 자식보다 1/7만 줬다. 천인 첩의 자식에게는 본 아내의 자식에 비해 1/10만 줬다.

첩의 자식에게는 아버지가 생전에 별급이라는 형식으로 재산이나 노비를 나눠줬다. ‘속대전’에 따르면 노비 1명을 토지 10부(약 270평)로 계산하도록 기록돼 있다. 속대전은 ‘경국대전’ 시행 이후에 공포된 법령 중에서 시행할 법령만을 추려서 편찬한 통일 법전을 말한다.

이 같은 상속제도는 언제부터 장남을 우선시 하게 됐을까. 바로 조선시대 후기다. 유교 국가가 되면서 대를 이을 맏아들을 최우선으로 여긴 것이다. 장남은 재산관리인과 같은 입장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모든 형제가 유산을 받는 것이 과거보다 자유로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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