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곳간] 최초 여성 공무원 ‘궁녀’… 평생 왕실 위해 일해
[문화곳간] 최초 여성 공무원 ‘궁녀’… 평생 왕실 위해 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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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2018.11.21
ⓒ천지일보 2018.11.21

쌀·콩·북어 등으로 삭료지급
등급에 따라 월급 천차만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매달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다. 바로 ‘월급날’이다. 한 달의 수고를 보상받는 이날은 자신에게는 물론 가족에게도 행복한 날이다. 직업 중 가장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직종은 무엇일까. 잘 알다시피 공무원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오늘날 공무원과 같 은 사람이 있었으니, 대표적으로 ‘궁녀’를 꼽을 수 있다.

◆지밀궁녀 월급이 제일 많아

궁녀는 원래 왕과 왕실 사람들의 생활을 돕는 역할을 한다. 궁녀는 상궁, 나인, 애기나인으로 나뉜다. 6~7세에 입궁하며, 15년쯤 지난 후 관례를 치르면 정식 나인이 된다. 나인이 된 뒤 15년쯤 지나야 상궁이 될 수 있다. 궁녀 중 최고 수장은 제조상궁이라고 불렀다. 제조상궁은 보통 1명만 임명했다. 궁녀는 월급제였다. 보통 의전옷 값, 선반밥, 삭료봉급 등 세 가지로 구분됐다.

의전은 1년에 두 차례 지급되는 옷값이다. 선반은 제공되는 식사다. 삭료공급으로는 쌀이나 콩 등이 내려졌다. 나인(정7품 이하)은 쌀 7.5말, 콩은 6되를 받았고, 상궁(정5품 이하)은 쌀 16.5말, 콩 5되, 제조상궁(1명)은 쌀 25.5말, 콩 5되를 받았다.

명태를 말린 북어는 궁녀들에게 지급되는 월급 개념의 선물이기도 했다. 고종 32년(1895)에는 선물 품목이 대구에서 북어로 바뀌면서 대구어 1마리 대신 북어 5마리의 비율로 환산해 궁녀들에게 삭료로 지불했다.

나인은 북어 50마리, 상궁은 북어 80마리, 제조상궁은 북어 110마리를 받았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월급이 가장 많은 궁녀는 왕의 침실을 돌보는 일을 맡은 지밀궁녀였다.

적게는 50원부터 많게는 190원까지 받았다. 이를 오늘날의 가격으로 치자면 적게는 250만원, 많게는 980만원까지 받은 셈이다. 나머지 다른 궁녀들은 월급이 비슷했다. 지밀궁녀 이외의 궁녀 월급은 40~80원 정도였다. 궁녀는 오늘날 공무원처럼 월급을 받았지만 일이 고되기도 했다.

◆역사에 기록된 궁녀 수

조선시대의 궁녀 수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연산군 시대에는 궁녀가 1000명이 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영조 대에 쓰인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지금 환관이 335명이고 궁녀가 684명이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종 말기에는 왕실 사정이 좋지 않아 200명 정도밖에 없었다. 대체로 조선의 궁녀는 600~700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궁녀는 보통 하루 쉬고 하루 일하는 2교대 근무였다. 근무 교대 시간은 오후 3시나 4시에 한 번, 또 새벽에 한 번 했다. 계절마다 교대 근무 시간이 바 뀌기도 했다. 궁궐의 살림꾼인 궁녀지만 궁궐에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했다. 평생 궁궐에서 살아야 했고 몸이 늙거나 병들어야만 나올 수 있었다. 가뭄이 심할 경우 궁녀의 한이 서린 탓이라 여겨 궁궐 밖으로 내보내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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