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곳간] 소 잡아먹으면 가뭄이 든다?
[문화곳간] 소 잡아먹으면 가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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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2019.5.10
ⓒ천지일보 2019.5.10

‘금살도감’으로 도살 막아
 태종 때 오랫동안 비 안오자
 승정원 “소의 원한 때문”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사또, 제가 아랫집 김 서방이 소 잡는 것을 봤구먼유.” (농부)

“네 말이 사실이렸다! 여봐라! 어서 가서 김 서방을 잡아오너라.” (사또)

조선시대에 한 남자가 관아에 끌려왔다. 소를 잡았다는 이유에서다. 사또는 화를 내며 소를 잡은 게 사실인지 확인했다. 김 서방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라며 눈물을 흘리며 죄를 토로했다. 이는 무슨 상황일까. 조선시대에도 소를 먹었을 텐데, 왜 소를 잡은 게 관아에 끌려갈 정도로 문제가 된 것일까.

◆농업사회, 농사에 소는 중요

사실 조선 개창 이후 왕족들은 소고기를 자주 먹었다. 소고기 사용하는 법이 실록에 기록될 정도로 많은 소들이 도살됐다. 하지만 조선은 농업사회였다. 농사일의 대부분은 소의 힘이 필요로 했다.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것이 효율적이었고 깊이갈이를 할 수 있어 생산력이 증가했다.

이에 소를 도살하지 못하는 강력한 정책이 필요했는데 고려와 조선시대 초기까지 이어진 것이 ‘금살도감(禁殺都監)’이다. 만약 소를 잡아야 할 경우에는 관청의 공식적인 허가가 필요했다. 늙거나 병든 소만 잡을 수 있었고, 공식 허가를 받아도 세금을 낸 뒤 처리 가능했다.

태종 6년(1406년) 4월, 조선왕조실록에는 ‘달단 화척에게 소와 말 잡는 것을 금하도록 거듭 밝혔다’고 기록돼 있다. 즉 국법으로 밀도살을 금한 것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소는 몰래 도살됐다. 이에 태종 11년(1411년)에는 소의 도살을 전문으로 하는 신백정(新白丁)을 조사 색출해 도성으로부터 90리 밖으로 내쫓았다. 세종 7년(1425년)에는 도성 서쪽 무악산 아래의 신백정을 도성 밖으로 내쫓았다.

세종 29년(1447년) 3월 기록에는 ‘농사짓는 소를 달단 화척에게 팔기만 해도 재산 몰수, 수군 편입, 소를 훔쳐서 도살하면 장 100대에 얼굴에 문신을 새기고, 재산 몰수, 수군에 편입시킨다’는 내용이 담겼다.

◆소의 원한, 자연 운행질서 영향 준다 믿어

조선시대에는 농사를 지은 후 소를 잡아먹으면 소의 원한이 사무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소의 원한은 자연의 운행질서를 깨뜨리고 결국 비가 오지 않게 한다고 믿었다.

실제로 태종 임금 때 오랫동안 가뭄이 들었는데, 승정원에서 아뢰기를 백성들이 소를 잡아 먹 어서 가뭄이 든다고 했다. 기록에 보면 “소를 잡지 말라고 명령했는데 소를 잡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자를 고발하는 사람에게는 범인의 재산을 상으로 주옵소서. 또 백성들이 소고기 먹는 것을 금하고 이를 어기는 자에게는 벌을 주십시오”라고 돼 있다. 가뭄으로 인해 태종 때는 고기반찬을 멀리하고 술을 끊기도 했다.

송시열도 가뭄의 원인에 대해 “농사가 흉년이 드는 것은 소를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소의 원한이 비를 내리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절로 죽은 소의 고기는 어떻게 했을까. 서울 내에서는 한성부에서 세를 매기고, 서울 바깥쪽에서는 관사의 명문을 받은 후 매매를 허락했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 처벌을 받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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