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 한국외대중국연구소 연구위원 

 

제목은 중국과 백두산이지만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창바이산(長白山)이라고 부른다. 한국과 통칭이 다르다. 이름도 다르지만 뭔가 백두산에 대해 중국은 의도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 일반 중국 인민들은 백두산이 중국 것 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아예 관심 없는 사람이 많지만 중국 것이라고 당연히 여긴다. 조금 배운 사람들은 다르다. 백두산이 원래 중국 것인데 양보해서 반 이상을 떼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중국에 유학할 시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같이 공부했던 동료 중에 지도교수가 똑같아 친하게 지냈던 동학(同學)이 있었다. 하루는 우연하게 백두산 얘기가 나왔다. “백두산은 자고이래(自古以來) 중국 것인데 자국의 주은래 총리가 김일성과 담판할 때 양보를 해서 북한에 주었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당연히 북한이 약해서 중국에 천지의 반을 뺏긴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해방 전 만주벌판은 한민족의 주요무대였고 국경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던 시기지만 백두산을 훨씬 뛰어넘어 북쪽으로 선조들이 살았기에 대부분 한국인들은 자연스럽게 백두산은 다 우리 것으로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1992년 8월 중국과 정식 수교 하면서 백두산 여행이 점차적으로 시작되고 가보니 백두산이 대부분 중국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한민족에게는 민족의 성산(聖山) 아닌가. 상징성이야말로 표현을 못하는 곳 아닌가. 아련하면서도 생전에 꼭 가봐야만 하는 성지로 여기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중국을 근 300여년 통치한 청나라의 만주족도 백두산을 만주족의 성산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외치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이라는 것이 있다. 56개 다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은 그들의 강역 내에서 일어난 일체의 과거사는 모두가 중국사라는 주장이다. 중국에 조선족도 현재 대략 180만명 정도 있다. 동화정책과 한국으로 와서 살아가는 관계로 나날이 줄어드는 추세이다. 이분들도 중국쪽 시각에서 당연히 중국 사람이다. 이 조선족 성지 백두산 즉 중국 사람들의 성지라는 논리의 확대 연장을 중국은 펼친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것이 있다. 들어보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2002년 시작된 일종의 중국판 ‘동북지방역사개조 프로젝트’이다. 고구려 발해 역사를 중국의 소수민족 역사로 편입시켰다. ‘중국의 변방지역의 역사이다’라고 명명했다. 한때 한국정부의 항의도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부친다. 고구려의 강토이고 발해의 강토인데, 우리 선조들의 땅이었는데 일개 중국의 소수민족들이 한때 활발하게 움직였던 곳이라고 억지로 역사를 서술하고, 오늘도 일련의 역사 날조 작업은 세미나나 논문, 그리고 책자 발간을 통해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대에는 당연히 옛날에도 중국 것이라는 이러한 책과 논문 그리고 월간지등이 있다고 우겨댈 것이 자명하다. 여기서 한국은 냉정하고도 정치한 계획을 가지고 치밀한 대응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객관적으로 알려진 바는 김일성과 주은래가 1962년 중조변계조약(中朝邊界條約)을 서명했다. 직후 천지 국경분할에 합의했다. 이때 중국이 49.5%를 북한이 50.5%를 관할하기로 했다. 중국은 오히려 자기들이 북한에 양보를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중소분쟁이 격화됐던 시기이다. 북한을 자기편에 끌어 들이기 위해 북한의 주장을 대폭 수용했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에 올라 손을 맞들었다. 세계적 이슈가 됐다. 한국의 모든

방송국 그리고 신문에 톱뉴스를 차지한 영상과 사진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중국의 주류 신문인 인민일보와 통신사 신화사, 국영방송 CCTV는 단신 처리에 그쳤다. 사진과 영상을 보지 못했다. 그들의 산에 올라가 노는 모습이 거슬리는 것이다. 반면에 중국정부는 “남북한의 대화는 적극 지지한다”라는 일관된 입장이다. 조속히 통일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인 대한민국과 서명하지 않은 국경 조약은 무효라고 주장할 힘을 키우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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