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中에서 구미호로 등장하는 여배우.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 구미호(九尾狐), 본래는 선도 터득해 천계에 살려는 존재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무더운 여름 시원한 수박보다 온몸을 더 시원하게 하는 게 있다면 안방극장을 강타하는 남량특집극이 아닌가 한다. 등골이 오싹하고 식은땀이 흐르는 귀신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더운 여름날 밤을 보내는 우리 선조들의 생활방식 중 하나였다. 특히 귀신이야기 하면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가 바로 ‘구미호(九尾狐)’다.

30대 이상이라면 한 번쯤 본 기억이 있는 대표적인 남량특집극 ‘전설의 고향’의 단골손님도 단연 구미호였다. 황금빛 털에 9개의 꼬리를 가진 여우 형태를 한 동물 구미호. 오래 전부터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이 구미호가 2010년 드라마 <구미호 여우누이뎐>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안방극장을 찾았다.

재미있는 것은 요즘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는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보이는 ‘구미호’ 캐릭터가 종래와는 다른 이미지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소 산 채로 잡아 먹고 사람 간 먹는 무서운 존재
최근 TV에선 귀엽고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그려져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구미호는 사람이 되기 위해 소를 산 채로 잡아먹고, 사람의 간을 파먹는 무서운 존재로 그려졌다. 물론 생명의 위험을 느끼지 전에는 사람을 먼저 해하지는 않는다.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의 구미호 또한 전반적인 캐릭터는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 설정은 구미호의 미모를 시샘한 인간 여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소문으로, 무서운 존재라기보다는 귀엽고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현중기(玄中記)>에 의하면 여우가 천년을 묵어 구미호로 변하며, 구미호가 된 여우는 하급 신에 가까운 능력을 지니게 되고 그 능력이 극에 달하면 선도를 터득해 천계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구미호는 대개 여성으로 묘사되며, 인간으로 둔갑할 때도 여성인 경우가 많다.

중국, 일본에 등장하는 구미호는 대체적으로 표독하고 무서운 존재로 사람들을 홀려 세상을 어지럽히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 반면 한국의 구미호는 일방적으로 사람을 해하기보다는 인간이 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품은 존재로 그려진다.

아리따운 여성으로 둔갑한 구미호가 인간 남자와 살면서 100일 동안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으면 진짜 인간이 될 수 있지만 이상하게도 한국의 구미호 이야기는 꼭 하루를 남겨두고 그 정체를 들키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것도 자신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인간들의 탐욕과 의심, 편견으로 만들어진 비극이다.

구미호는 말 그대로 꼬리가 아홉이라 목숨이 아홉 개라는 말이 있다. 또한 구미호가 가지고 있다는 ‘여우구슬’은 알사탕정도 크기의 청색 구슬로 구미호의 도력을 상징한다고 하며, 인간의 정기를 취할 때 여우구슬을 쓴다는 이야기도 있다. 바로 이러한 신비한 도력을 지닌 존재이기에 오히려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이용당하기도 한다.

사람들에 의해 요괴, 요물, 괴물로 불리면서도 자신을 해하려는 인간들을 돕기도 하고,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도 버리는 구미호. 어쩌면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사람들보다 나은 존재일지도 모르지만 다르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고 인간이 되려는 소망마저도 짓밟히는 존재.

한국 전설이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구미호를 포함한 대부분의 귀신들이 무작정 사람을 해치기보다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무지함을 일깨워주는 존재로 그려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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