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이야기(5)] 왕의 효심이 가득한 창경궁
[궁 이야기(5)] 왕의 효심이 가득한 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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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 명전전을 들어서려면 옥천교를 건너 명전문을 지나야 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여름 어느 날 창경궁(昌慶宮) 안은 고즈넉하기만 하다. 새로이 단청을 칠하고 있는 다른 궁들과 달리 대부분의 창경궁 전각들은 색이 바랜 채로 있어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한껏 난다.

모든 궁에서 볼 수 있듯 정문인 홍화문을 지나면 금천 위로 놓인 금천교, 즉 옥천교가 있다. 나쁜 기운이 궁궐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다리 중간 즈음 도깨비 얼굴이 새겨져 있다. 궁궐마다 있는 다리들 가운데 옥천교만이 ‘보물’로 지정됐다. 무지개처럼 생긴 둥그스름한 다리 좌우로 아름다운 난간이 있으며, 양끝 기둥 위에는 해치상이 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창경궁이 건립될 즈음 조선 성종 13년(1483)으로 추정된다.

◆성종의 효심으로 탄생한 궁

성종은 할머니인 세조 비 정희왕후, 어머니인 덕종 비 소혜왕후, 작은어머니인 예종 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창경궁을 만들었다. 당시 성종은 창덕궁이 점차 좁아지자 대비들이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창덕궁에 이웃해 창경궁을 건립한 것. 이러한 이유로 창경궁은 왕의 정사보다 생활공간을 넓힐 목적으로 세워져 경복궁이나 창덕궁과 비교했을 때 아늑하고 독특함을 자랑한다.

창경궁은 조선시대 다른 궁궐 전각들이 남향으로 지어진 것과 달리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정문인 홍화문과 정전인 명전전은 동쪽을, 관청 건물인 궐내각사와 내전의 주요 전각들은 남쪽을 향해 있다. 이는 남·서·북쪽이 구릉이고 동쪽이 평지인 지형적 특성에 따라 지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창경궁은 다른 궁들에 비해 왕가에서 일어난 이야기가 유독 많다. 현재 MBC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동이>에서 장희빈과 인현왕후,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도 이곳에서 펼쳐졌다.

정조 역시 성종 못지않게 부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다. 영춘헌 일곽과 양화당 사이로 높은 계단을 오르면 수풀이 우거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원래 이 터는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자경전(慈慶殿)이 있었다.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억울하게 돌아가심을 위로하고자 창경궁 맞은편 현재 서울대병원 자리에 사도세자의 사당을 짓고 이름을 경모궁이라 칭했다. 살아계시는 혜경궁 홍씨를 위해 경모궁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자경전을 건립했던 것.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신정대비 조씨를 위해 건립한 경복궁 자경전은 바로 창이를 보고 따라 지은 건물이다.

◆일제 ‘창경원’으로 격하… 시련 많은 궁

창경궁은 다른 궁들보다도 많은 아픔이 서려있는 곳으로 일제의 흔적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1909년에 일제가 궁궐 내부에 큰 호수와 대온실을 만든 후 일반인들에게 관람시켰다. 아울러 1911년에는 박물관을 짓고 이름을 창경원으로 격하했다.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 궁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함이라고 주장했으나 사실 우리 문화를 없애려 했던 정책 중 하나였다.

아울러 일제는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산맥을 절단해 도로를 닦았으며, 궁 안에 일본인이 좋아하는 벚꽃을 수천 그루 심었다.

광복 이후에도 창경궁의 시련은 계속됐다. 전각이 거의 남지 않은 상태에서 1950~1960년대에는 각종 놀이기구가 궁 안에 들어왔다. 옛 궁궐의 위엄은 찾아 볼 수 없었다.

1983년 7월부터 복원공사를 위해 일반 공개를 중단하고 같은 해 12월에는 창경궁으로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아울러 정부는 연못 춘당지와 대온실은 우리나라식으로 조성했다. 하지만 창경궁이 지닌 본래 모습에 비해 복원된 현재 모습은 협소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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