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랑’ 김지운 감독. (제공: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인랑’ 김지운 감독. (제공: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오시이 마모루 원작 영화화에 도전

“다음 작품 할 때 교훈 삼을 것”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오시이 마모루 감독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1999년 애니메이션 ‘인랑’은 전 세계 마니아들의 열광 속에서 고전으로 남았다. 영화화할 수 없었던 이 작품은 ‘반칙왕’ ‘놈놈놈’의 팬이었던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 ‘장르 도장 깨기’를 실현 중인 김지운 감독이 만나면서 실사화됐다.

데뷔작 ‘조용한 가족’부터 최근 개봉한 ‘인랑’까지 김지운 감독은 흥행과 상관없이 새로운 장르와 소재, 캐릭터를 선보여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는 ‘반칙왕’으로 주류에서 밀려난 소시민의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장화, 홍련’으로 한국 호러 영화 최고 흥행작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만주 벌판을 질주했고, ‘악마를 보았다’를 통해 세계 스릴러 마니아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이번에도 전작인 일제강점기 친일과 항일의 경계에 선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밀정’과 전혀 다른 북한 통일을 앞둔 2029년의 혼돈기로 눈을 돌렸다. 영화 ‘인랑’이다.

영화 ‘인랑’ 스틸. (제공: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인랑’ 스틸. (제공: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25일 개봉한 ‘인랑’은 2029년 경찰조직 ‘특기대’와 정보기관인 ‘공안부’를 중심으로 한 절대 권력기관 간의 숨 막히는 대결 속 늑대로 불리는 인간병기 인랑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김지운 감독을 만나 ‘인랑’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봤다.

‘인랑’을 각색하게 된 계기에 관해 묻자 그는 “사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1995)’가 하고 싶었다”며 “한국 시장에서는 불가능할 듯해서 할리우드 가서 만들어보자 싶었는데 그사이에 판권이 넘어갔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던 차에 ‘인랑’이 눈에 들어왔다. 로보캅이나, 아이언맨, 배트맨처럼 강화복 액션을 한국 영화에서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김지운 감독과의 일문일답.

-통일을 준비하는 혼돈기의 한국을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는.

아시아에서 가장 비슷한 한국과 일본이 현대화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정치적 격동을 겪었다. 그래서 원작처럼 4.19나 5.18, 촛불집회 등 과거로 할까하다가 현재의 이슈를 가지고 근 미래를 이야기하면 현실감 있게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통일이 온다면 정치적 탄압 등 여러 수단으로 남북을 억압하고, 경제의 파탄이 올 것 같다. 통일을 중심으로 주변에 밀려나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치열한 갈등을 그리면 원작의 느낌을 잘 드러낼 것 같았다.

영화 ‘인랑’ 김지운 감독. (제공: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인랑’ 김지운 감독. (제공: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에 관한 평가가 갈리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원작 팬들은 허무주의적이고 심오한 세계관을 기대했을 것이다. 각색하면서 ‘야만의 시대에 사랑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주제가 역전됐다. 영화는 집단과 개인의 이야기다. 몇 년간 모든 사회가 정형화됐다고 생각한다. 집단이 개인을 가둬놓는다. 개인의 자아는 없어지고, 개인은 고립된다.

저는 영화에서 집단에 고립된 주인공 ‘임중경(강동원 분)’이 여자 ‘이윤희(한효주 분)’, 친구 ‘한상우(김무열 분)’, 스승 같은 존재인 ‘장기태(정우성 분)’를 거치면서 자각하고 변화하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상우는 공안부, 이윤희는 섹트, 장기태는 특기대 등 각 인물은 집단을 대변한다. 임중경과 이윤희가 서로 같은 처지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임중경이 개인의 감정을 끌어 올리는데 그것을 멜로 라인으로 존 것 아닐까.

-멜로 때문에 낯설어하는 관객도 있을 것 같다.

그럴 수 있다. 제가 변화하는 과정을 영화에 반영하는 편이다. ‘조용한 가족’이나 ‘반칙왕’은 서사와 플롯이 드러난다. ‘조용한 가족’은 스타일이 강했지만 서사가 있었고, ‘장화홍련’ ‘달콤한 인생’ 넘어오면서 이미지로 대처하려고 시도했다. ‘악마를 보았다’는 정형화된 복수극이고, ‘달콤한 인생’은 이게 복수인지 뭔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 미숙한 남자가 거치는 행로라고 생각한다. ‘밀정’과 ‘인랑’도 이 같은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변하는 것들이 들어가서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화가가 화풍을 바꾸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단 막대한 제작비가 든다(웃음).

영화 ‘인랑’ 스틸. (제공: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인랑’ 스틸. (제공: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SF 장르도 했으니 이제 다른 장르에 도전하는 것인가.

SF는 지금 시작한 거다. 정말 본격적인 SF를 하고 싶다. ‘블레이드 러너’ 광팬이었고, 그 영화의 세계관을 좋아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게 많으니까 (제 의도와) 딱 맞아떨어지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인랑’이 잘되면 ‘인랑2’를 찍으면서 새로운 특기대 강화복 액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인랑’을 원하는 대로 그린 것 같은가.

구현하려고 했던 것은 이뤄냈다. 성취감은 있지만 내 만족으로 영화를 만든 게 아니라 관객을 생각하고 만든 것이니까 관객들의 심판을 기다리는 상태다. 그건 또 흥행이랑 다르다. 흥행은 되면 좋은 것이지만. 요소 적으로 갈릴 것 같다. 평가와 판단, 심판은 겸허히 받겠다. 그리고 다음 작품 할 때 교훈으로 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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