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혐오 부추기고 있다” 지적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가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에 대해 29일 “한국이 어느 정도 난민을 수용해야 하고, 그 수용을 하기 위해 어떤 공정하고 신속한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필규 변호사는 이날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까지 나온 정부의 입장이나 언론 보도 행태를 봤을 때,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는 같은 날 제주도 예멘 난민에 대해 추가 인력을 투입해 심사시간을 조기에 마무리하고, 향후 ‘난민심판원’을 신설해 이의제기 절차에 소요되는 기간을 단축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황 변호사는 “뜬금없다”고 지적했다.

황 변호사는 “지금 있는 인력과 예산으로 할 수 있는 걸 하지 않으면서도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받아서 잘해보겠다는 괘씸한 발표”라고 질타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사회복지 서비스와 관련해 전문성이 있는 담당 부처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통합적인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한국의 경우 난민과 떼래야 뗄 수 없다”면서 “박해 위험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세계 난민의 날인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열린 난민 정책 규탄 기자회견에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가 한국 난민 제도 운영의 의미와 경과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세계 난민의 날인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열린 난민 정책 규탄 기자회견에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가 한국 난민 제도 운영의 의미와 경과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다음은 황필규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 정부가 발표한 난민 대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뜬금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향후 대응 방안에서 난민 제도를 악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예멘 난민이 난민 제도를 악용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난민 제도 악용을 들고 나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적절한 입장이라고 본다. 예멘 난민 사태를 활용해 (정부가) 그동안 주장해 왔던 걸 관철하려는 것 아닌가. 상황에 맞지 않는 대응 방안이다. 난민심판원에 대해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고 그것을 제대로 심사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원론적으로 난민심판원을 두는 건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의제기 절차와 관련해 반이 정부 위원으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민간위원도 상당수 비전문가가 이의 절차를 진행한다. 게다가 당사자가 이의 신청한 내용을 보는 게 아니라, 한 번 걸러서 실무자들이 요약된 의견서를 제출하면 그걸 갖고 심사한다. 이의 절차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법무부가 이의 절차를 유명무실하게 운영하는 게 난민심판원이 없기 때문인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기존 제도를 잘못 운영했는지에 대한 언급 없이 막연히 인력과 예산을 더 달라는 주장에 불과하다. 정부 입장 자체는 기존 제도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의를 무효화하고, 인력과 예산을 엄청나게 더 받아서 잘해보겠다는 게 아닌가. 실제로 지금 있는 인력과 예산으로 할 수 있는 걸 하지 않으면서도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받아 잘해보겠다는 괘씸한 발표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드러난 부적절한 입장 표명이다.

- 난민 혐오증이 확산하는 양상인데, 어떻게 보는가.

기본적으로 혐오의 관점을 가진 사람이 잘못되고 왜곡된 인식을 확산하는 데 일조하는 양상이다. 그걸 잘 모르는 사람은 그런 분위기에 동조하거나 공감한다. 팩트 자체를 뒤틀어서 의도를 갖고 잘못된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한국도 흉악범이 많고 살인사건도 계속 벌어지는데, 그런 사례 1~2건을 갖고 한국인은 엽기적인 살인을 하는 문화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 언론이나 정부가 명확하게 짚어주고 바로잡도록 해야 한다. 현재까지 나온 정부의 입장이나 언론 보도 행태를 봤을 때,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 제주도 예멘 난민에게 가장 시급한 대책은 무엇인가.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는 대상은 난민들이다. 새로운 곳에 왔고 언어도 안 통하는 상황이다. 박해를 피해 왔는데 난민들이 가장 피해를 보는 집단이다. 난민 신청 절차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처리해야 한다. 난민에 대한 지원도 법에 근거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법무부가 난민 출도 제한한 부분에 대해 반성할 필요가 있다. 제주도 심사 인력이나 전문성이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 상황에서 출도 제한을 한 부분을 해소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물론 법무부도 취약계층이나 가족이 있는 난민은 출도를 허용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안다. 하지만 좀 더 세심한 배려나 조치가 필요하다.

-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를 해결할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무엇인가.

한국 난민 보호 과정은 발전해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면서 정책을 수립하고 장단기적인 정책이 시행되는 과정이었다기보다는 그때그때 인권적 요구나 출입상 요구에 대해 즉자적으로 대응한 측면이 있다. 이제 기존의 즉자적이고 실무적인 것에 불과했던 난민 관련 제도와 관행을 정책이 있는 방향으로 가져가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한국이 어느 정도 난민을 수용해야 하고 그 수용을 하기 위해 어떤 공정하고 신속한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좋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 혐오로 발전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인권이나 국익의 측면에서 굉장히 치명적일 수 있다. 지금 정부가 입장을 발표하면서 범죄 우려가 있다고 해서 특별순찰을 돌겠다고 얘기할 게 아니다. 새로운 사람들이니깐 범죄 우려를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통계 등을 보더라도 이들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별로 없다. 정부 입장에서 내외국인 차별 없이 치안이 유지되도록 하겠다는 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맞다. 지금까지 나온 입장이 그렇지 못했던 건 순간을 모면하는 것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국익을 훼손하는 입장 표명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지난 18일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인들이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긴급 구호 물품을 받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지난 18일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인들이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긴급 구호 물품을 받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 난민 지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지적이 있다.

난민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고 개인도 많은 권리나 의무를 갖게 됐다. 사회적 서비스도 특정 부처나 특정 단위가 다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한국은 부처가 협력해서 하나의 완성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부처는 다르지만 하나의 통합된 서비스로 다가갈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또 외국인과 관련한 사회복지 서비스 자체를 복지적, 인권적 관점에서 배치할 필요가 있다. 법무부가 복지 서비스조차 주관한다는 점에서 형식적으로는 컨트롤타워다. 하지만 경험이 없고 전문성이 없으며, 제대로 상담하고 필요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력이나 예산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뭔가를 꾸리고 있지만,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사회복지 서비스와 관련해 전문성이 있는 담당 부처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통합적인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더 해야 한다.

- 우리나라가 왜 난민을 수용해야 하나.

작년 유엔난민기구 통계에 따르면, 6800만명이 난민 혹은 그와 유사한 지위에 있다고 한다. 1000명당 난민을 보호하는 비율과 관련해 한국 순위가 139위다. 경제력은 10위권인데 난민 호보하는 순위는 뒤에서 10위~20위권이다. 국제사회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제주도는 100개국 이상의 사람이 관광을 오고 각종 국제회의가 열리는 곳이다. 국제도시 제주에서 500명의 난민을 놓고 국가적 논란이 벌어진다는 데 대해 외국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국내법적으로, 국제법적으로 난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가 있다. 그런 의무는 우리나라만 있는 게 아니다. 100개 이상 나라가 난민 협약에 가입하면서 이런 의무가 있다는 걸 당연하다고 확인하고 있다.

난민은 우리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상해임시정부도 정치적 난민이 만든 정부였고, 한국전쟁 당시 유엔한국재건기구가 조 단위의 예산을 갖고 지원했다.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남았고 우리가 태어날 수 있었다. 조 단위로 투입됐던 유엔 구호 기금 자체가 미국이나 선진국에서만 온 게 아니라,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 혈세가 우리나라 할머니, 할아버지를 살렸다. 그 이후에도 유신독재, 군부독재에서 미국이나 유럽으로 넘어갔던 정치적 난민이 있었다. 제주도 양민학살 당시에도 일본으로 간 사람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만 하더라도 전형적인 정치적 난민이었다. 미국이 김 전 대통령을 보호하지 않았으면 그런 지도자를 가질 수 없었다. 그 여느 나라 못지않게 한국의 경우 난민과 떼래야 뗄 수 없다. 박해 위험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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