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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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희 건축가
99명의 귀신이 있었다. 그 중에 1명의 귀신은 대충대충 시간을 보냈다. 98명의 귀신은 제법 깔끔하고 빈틈없이 지내며 남들에게 방해를 하는 일도 없었다. 대충 살아가는 1명의 귀신은 어디에서든 눈에 띄는 행동들을 했기 때문에 왕따와 다름없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격식을 차리는 귀신들은 어느새 지쳐 가고 있었다. ‘제발 나에게도 무관심을 주세요.’ 

격식을 위한 격식은 존중이 아닌 꼬투리잡기로 이어져간 것이다. 서로간의 예의에서부터 식사예절, 옷매무새, 더 나아가서는 옷의 종류와 가격에까지 신경써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침내는 말투까지도 각자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눈치를 주고 나무랐기 때문에 귀신들은 말하는 것마저 꺼리게 됐다. 하지만 대충 사는 대충 귀신은 그런 눈총에는 아랑곳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전처럼 수다스럽게 아침으로는 무엇을 먹었는지, 점심은 어디에서 먹었는지, 저녁은 누구와 먹었는지 물어보며 다녔다.

물론 때때로 아꼈으면 좋았을 말을 하기도 했다. 누굴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누굴 싫어하는지 또 왜 싫어하는지 같은 이야기들도 들으러 다니곤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귀신들은 대충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대충이는 다른 귀신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대신 눈총을 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대충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는 것이 편하고 즐거운 일이 됐다. 그렇다고 만남을 대충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찾아오는 동료들을 위해 마음을 다했다. 대충 사는 것의 즐거움도 알지만 격식을 차리는 그들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오히려 격식을 차리다가 소중한 마음이 소강상태가 된 그들보다는 더 절실한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갔기 때문이다.

세상에 쓸모없어 보이는 것도 소중할 때가 있고 모두가 바라던 높은 가치도 어느 순간에 갑자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겠다. 99명 중 한명이라도 자신의 존재감은 충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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