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백성 위한 다스림은 무엇일까” 고심한 ‘다산’에게 쉼을 허락한 ‘두강’
[쉼표] “백성 위한 다스림은 무엇일까” 고심한 ‘다산’에게 쉼을 허락한 ‘두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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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다산 정약용 선생의 탄생지에 조성된 다산생태공원.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거대한 팔당호를 이루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0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다산 정약용 선생의 탄생지에 조성된 다산생태공원.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거대한 팔당호를 이루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0

 

쉼표 탐방 ‘다산유적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심정

말씀이 없고 道도 사라진

당시 지도층에 비판 가해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1표2서’ 저술, 경각심 일으켜

거중기 제작 등 실학 선도해

[천지일보=강수경·이성애 기자] 전쟁과도 같은 일터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한껏 더워진 날씨를 기회 삼아 이국적인 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객이 많다. 자연으로의 회귀 본능이다. 왜 인간은 자연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힐링’ ‘안식’ ‘쉼’ 이란 단어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곳이 있다. 바로 고향이다. 마치 자신의 출생지를 찾아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들이 햇살을 튀겨내며 빛 조각들을 내듯, 고향을 찾아가는 이들은 그 눈에 빛을 담는다.

다산 정약용도 그러했다. 전남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다 고향 ‘두강(斗江)’에 돌아왔을 때의 벅차오른 심정을 그의 시 ‘환초천거(還苕川居)’에 녹여냈다. 귀양살이 중에도 고향이 그리워 그림으로 그려보려다 수차례 실패했던 경험은 ‘소천사시사(苕川四時詞)’에 표현해놓고 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했던가. 다산의 심정으로 팔당호와 인근 산천초목을 바라보니 마치 다산이 된 듯하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팔당호를 이루며 한강으로 뻗어져 나가는 두강 옆에 자리한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유적지는 정약용의 고향이다.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다산유적지 내 다산생가. 관람객들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0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다산유적지 내 다산생가. 관람객들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0

 

조선 당대 최고의 사회 과학자로 꼽힌 인간 정약용의 진한 향수가 어린 곳이다. 올해 목민심서 저술 200주년을 맞아 지역민들의 자랑거리가 된 다산유적지를 찾았다.

다산유적지는 다산의 생가와 무덤이 있고, 다산기념관과 실학박물관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다산이 묵상을 하던 산책지가 됐을 팔당호 인근에는 다산생태공원이 조성돼 있으며, 인근에는 물의 공원도 꾸며져 자연과 함께 조용히 휴식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다산유적지는 한강을 따라 남양주시로 올라가 팔당댐을 지나 두물머리 도착 전 팔당호를 끼고 있다. 드넓은 호수가 수려한 경관을 만들고 있었다. 이곳은 특히 바람을 쐬러 오는 드라이브 여행객이 많았다. 좁게 뻗은 도로 곳곳 벽에는 청춘들이 애정을 확인하며 그려놓은 문구들도 있었다.

지금은 휴식터가 됐지만, 다산은 이곳에서 그가 펼쳤던 학문·사상을 실생활에 적용해 실학으로 발전시키는 등 끊임없는 창작물을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저작은 ‘1표2서’로 요약된다. 바로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다. 이외에도 500여권의 경집과 문집을 저술했고,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수원 화성을 설계했다. 거중기 등 과학기구를 제작했으며 마과회통 등 의학서적을 남기기도 하는 등 이 조용하고 고요한 마을에서 남긴 업적이 어마어마하다.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다산기념관에 전시된 목민심서.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0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다산기념관에 전시된 목민심서.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0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다산기념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0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다산기념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0

 

단연 주목을 받는 저술은 1표2서다. 이 책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당시 권력층의 부패상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오늘날 권력층의 행태와 오버랩 돼 거리감이 전혀 없다.

경세유표에서는 조선의 전 국토를 도로망으로 연결하는 생활권역으로 나눠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와 정전법으로 구획된 농촌으로 구성하려는 거대한 국가개혁론이 제시돼 있다.

특히 목민심서에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들이 지켜야 할 기준을 확립하고 구체적인 사무를 제시하며 ‘자신을 다스려라’ ‘공무에 봉사하라’ ‘백성을 사랑하라’는 세 가지의 자세를 밝혔다.

1821년 기록된 목민심서 서문에는 “군자의 학은 수식이 그 반이요, 나머지 반은 목민일 것이다. 성인의 시대가 이미 멀어졌고 그 말씀도 없어져서 그 도가 점점 어두워졌으니,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바는 알지 못한다”며 당시 탐관오리들을 질책했다.

그는 “하민들은 여위고 시달리고, 시들고 병들어 서로 쓰러져 진구렁을 메우는데, 그들을 기른다는 자는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 살찌우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라고 당시 현실을 개탄했다.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다산생태공원 내 설치된 다산저서 포토존. 다산생태공원 곳곳에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기 좋은 포토존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0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다산생태공원 내 설치된 다산저서 포토존. 다산생태공원 곳곳에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기 좋은 포토존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0

 

이듬해 저술한 흠흠신서에서는 백성들의 생명을 소중히 하고 보호해야 하는 역할을 밝히고 있다.

흠흠신서 서문에서는 “오직 하늘만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또 죽이기도 하니 사람의 생명은 하늘에 매여 있는 것”이라며 “그런데 목민관이 또 그 중간에 선량한 사람은 편안히 살게 해주고, 죄 지은 사람은 잡아다 죽이는 것이니, 이는 하늘의 권한을 드러내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지도층에 대해 “사람이 하늘의 권한을 대신 쥐고서 삼가고 두려워할 줄 몰라 털끝만한 일도 세밀히 분별해서 처리하지 않고서 소홀히 하고 흐릿하게 하여 살려야 되는 사람을 죽게 하기도 하고 죽여야 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며 “그러면서도 오히려 태연하고 편안하게 지낸다. 더구나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고 부인들을 호리기도 하면서 백성들의 비참하게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도 그것을 구휼할 줄 모르니, 이는 매우 큰 죄악이 됐다”고 지탄했다.

당시 문란한 제도, 부정부패의 창궐 등은 백성의 삶을 궁지로 몰아갔다. 이러한 가운데 서학과의 교섭, 성리학적인 틀을 넘어선 사유, 연구와 저술을 통한 새로운 이론 체계의 제시 등 다산은 평생 그의 꿈과 닿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그 꿈을 제대로 펴지 못했다.

그가 염원했던 민생과 부국강병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두 물이 합쳐져 큰물이 되듯 다산이 이루려 했던 이상을 이뤄가야 할 숙제가 남았다.

다산의 학문은 근대 계몽기에 와서 신교육 교과서에 소개됐고 ‘조선왕조 500년 이래 제일의 경제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20세기 초에는 다산의 경세적인 저술이 근대적 출판물로 간행됐으나 현실 적용을 고려하는 단계였다. 그 뒤 1930년대 이르러 조선학 운동과 함께 다산의 저작들이 간행되고 실학은 학문 개념으로 인식됐다.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다산 정약용 선생이 고안한 거중기. 다산유적지 내 설치돼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0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다산 정약용 선생이 고안한 거중기. 다산유적지 내 설치돼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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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강 2018-06-11 13:49:41
오늘도 좋은 곳을 하나 알았네요 너무 좋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