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휘 청운대교수, 정치학박사, 문화안보연구원 이사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4.27남북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Korean War)의 종료를 선언하겠다고 밝혔다. 이 말은 ‘비핵화’와 함께 ‘휴전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바꾸자는 것을 정상회담의 공식의제로 언급한 것이다. 이런 급진전된 회담의제에 많은 국민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20일에는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에 핫라인이 설치됐고, 4.27 판문점 남북선언문에는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동시에 하는 ‘한반도 평화패키지’도 구상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호응하듯이 북한이 ‘로동당 전원회의 결정서’에 “4월 21일부터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로켓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라고 명시해 발표했다. 그러나 그 연설 앞부분에서는 “핵무기 병기화 완결이 검증된 조건에서 이제는 우리에게 그 어떤 핵시험과 중장거리, 대륙간 탄도로켓 시험발사도 필요 없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북부 핵시험장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쳤다”고 했다. 이어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라고 주장했다. 

이 말대로라면 핵실험 중단과 ICBM 발사중지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선언을 통해서 이미 북한은 핵무기 소형화와 전술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의미이며, ICBM 완성으로 미 본토로 핵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세계 9번째 핵보유국이 됐음을 역선언한 것일 수도 있다. 이 ‘로동당 전원회의 결정서’는 정상회담 전 양해된 북한내부통치용 선언으로 이중적 언어전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언어전술조차도 고도의 계산된 협상전술이기 때문에 신뢰보다는 경계를 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국제사회의 분위기에서 더 할 수 없는 핵실험의 중단과 쓸모가 없어진 풍계리 핵실험장의 폐기선언은 그럴 듯한 사전 협상전술로 볼 수도 있다. 결코 북한 비핵화는 이벤트행사가 아니라 본질적인 북한의 비핵화(非核化)로서의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라야 비로소 완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 비핵화의 협상도 하기 전에 북한을 상대로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휴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바꾼다는 것은 스스로 비핵화의 초점을 흐리는 악수(惡手)이다. 핵이 아니더라도 남북의 군사력차이는 상상을 불허한다. 남북 병력수는 65만명 vs 120만명으로 열세이고, 재래식 대칭전력(전차, 포, 비행기, 잠수함 등)도 수량적 열세다. 특히 비대칭전력(화생무기, 미사일, UAV)에서도 절대적 열세로 결정적인 군사력불균형의 요인이다. 따라서 평화협정 운운 이전에 ‘군축협상’부터 열려서 현실적인 쌍방군사력을 균형적으로 축소해야 한다. 군축협상에는 반드시 화생(化生)무기의 폐기처분도 대상으로 해야 한다. 군축협정 후 평화협정을 하자고 해도 늦지 않으며, 군축협상에 동의해야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출현한 이래도 협상테이블에서 이긴 국가는 거의 없었다는 역사의 교훈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중국의 장개석이 모택동과 협상하다가 망했고, 베트남전에서 미국의 키신저가 월맹의 레둑토에게 파리평화협상 하다가 속았다. 해방 후 미소(美蘇) 회담하다가 미군은 속아서 철수했고, 소련 스탈린은 김일성을 사주해 6.25 적화전쟁을 일으켰다. 한국전 휴전회담에서는 미국의 조이 제독이 북한의 남일에게 당했고, 북핵 6자회담에서도 중국과 북한에게 15년간 끌려다니다가 한·미·일이 속았고, 북한의 핵무장을 허용한 꼴이 됐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북한을 회담장으로 끌어낸 것은 정치적 대화와 협상도 아니었고, 외교적 제재와 압박도 아니었다. 바로 미국의 초강경 군사적인 옵션이라는 현실적 힘의 전략이 뒷받침되어 만든 것이다. 국가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화려한 말솜씨가 아니라 국가안보의 힘이 있어야 한다. “한 번 속는 것은 속이는 자가 나쁘지만 또 속는 것은 속는 자가 나쁜 것이다”는 말처럼 마치 평화가 온 것 같이 부화뇌동해서 김정은에게 속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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