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휘 청운대교수, 정치학박사, 문화안보연구원 이사 

 

진실한 평화(peace)는 마지막 전쟁(war)의 끝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또 전쟁(戰爭)이 난다면 그것은 평화(平和)가 아니라 새로운 정전(armistice)의 기만전술일 뿐이다. 지금 한반도에는 평화라는 단어가 넘쳐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사용하는 평화는 ‘전쟁의 반대개념으로 전쟁이나 분쟁 따위가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공산주의체제가 쓰는 사상적 의미(ideological meaning)로서의 ‘평화’는 ‘이 지구상에서 자본주의가 완전히 말살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공산화(communization)’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을 상대하는 관점에서 용어사용에 항상 주도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혹시 한반도의 비핵화(非核化)가 북한의 입장에서 비핵화(秘核化)인지 비핵화(備核化)인지는 철저한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검증돼야만 비로소 ‘평화’라는 용어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 김정일은 ‘베트남을 배우겠다’고 발언했던 적이 있었다. 이것은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베트남식 공산화 통일방안을 의미하는 적화야욕의 다른 언어표현이었다는 것은 2000년의 ‘6.15남북공동선언’과 2007년 ‘10.4남북공동선언’의 불이행에서 검증됐다. 이제 2018년 ‘4.27판문점선언’의 진실여부도 시간을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언제 북한과 공동성명이 없어서 이렇게 지내온 것은 아니다. 그 이전에도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1991년 ‘남북 화해와 불가침합의서’ 등 구체적인 상호이행사항에 많은 것이 있었다는 점에서 과신(過信)은 금물(禁物)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번 4.27판문점선언에서도 ‘완전한 비핵화’가 문서화됐지만 북핵 6자회담에서 기만당한 학습효과를 고려한다면 결코 선언적 의미 이상에는 신중하자는 여론에 일리가 있다. 4.27판문점선언은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된 듯한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남북정상회담의 주제가 ‘비핵화’였지 한반도 ‘평화분위기 조성사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13개항 선언문 중에 비핵화 조항은 마지막에 1개항뿐이고, 12개항이 불요불급(不要不急)한 남북평화분위기 조성으로 핵심을 빗나간 측면이 있다. 물론 남북정상이 11년 만에 극적으로 만나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총론적인 면에서 성과가 없지 않으나 각론에서 과거 약속했던 내용의 재탕(再湯)이어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라고도 볼 수 있다. 

더욱이 김정은의 이런 파격적인 정치행보는 중국 시진핑과의 전화통화에서 북미정상회담에서 “체제보장”을 받아내겠다는 전제조건을 걸고 ‘완전한 비핵화’에 동의하겠다는 저의(底意)가 드러났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북미정상회담 목적은 비핵화를 상품화해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을 보장받은 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가면서 김일성의 고려연방제를 의도하는 듯하다. 이런 반통일적 평화라면 이것은 국가적 위기를 자초하는 매우 위험한 정치적 협상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목표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체제보장을 전제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반통일정책으로 남북분단을 고착화하려는 반헌법적 정책이다.

평화는 입으로 떠든다고 다가오는 꿈이 아니다. 종전선언을 하면 당장 미군철수와 한미연합사 해체 및 전시작전통제권의 즉각 전환을 들고 나올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한미동맹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현재 남북 간 대칭 및 비대칭 군사력의 불균형은 절대적으로 남한이 열세다. 그러나 한반도의 ‘불균형의 균형(Balance of unbalance)’을 유지하면서 전쟁의 억제력을 제공한 군사력은 주한미군(USFK)이고, 한미동맹이다. 평화분위기에 들떠서 ‘평화’로 포장된 ‘평화공존’이라는 북한의 체제보장을 선택하면 비핵화와 무관한 현존 군사력 ‘불균형의 불균형(Unbalance of unbalance)’으로 적화통일이라는 국가존망의 위기를 부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 과정에는 현 군사력의 ‘불균형의 균형(Balance of unbalance)’을 ‘균형의 균형(Balance of balance)’으로 조정하기 위한 투명한 ‘군축협상’이 선행돼야 한다. 아무리 급해도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서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는 옛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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