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휘 청운대교수, 정치학박사, 문화안보연구원 이사 

 

우리 민족의 근대사는 한마디로 망국(亡國)의 일기였다. 일제의 침략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 박탈, 1910년 대한제국 국권찬탈로 이어지면서 식민지라는 치욕의 시대를 강제 당했다. 그러나 그 일기의 행간을 살펴보면 일제의 무자비한 식민지 탄압에 굴하지 않고 온 민족이 하나가 되어 간단없는 항일무장투쟁을 했다는 것이다. 독립운동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없었으며, 동서남북의 지역감정도 없었던 위대한 항일무장투쟁이었다고 역사는 증거하고 있다.

항일독립운동은 1919년 미국 윌슨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돼, 2.8독립선언과 3.1만세운동으로 일어났다. 이후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대한민국 임시헌장 10조에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통치한다는 것을 규정해 대한제국의 법통성을 승계하며 국제사회에서 독립국가수립을 위한 외교활동을 했다.

첫 성과로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 루스벨트, 영국 처칠, 중국 쟝제스가 만난 카이로회담(1943년 11월)에서 “현재 한국민이 노예상태 아래 놓여있음을 유의하여 앞으로 적절한 절차(in due course)에 따라 한국에 자유과 독립시킬 것을 결의한다”라고 조건부 보장을 받았다. 그 후 미국 루스벨트, 영국 처칠, 소련 스탈린이 만난 얄타회담(1945년 2월)에서 “자유선거를 통해 국민의 뜻과 합치되는 책임 있는 정부를 수립한다는 합의”를 통해 독립국가의 정부수립절차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미국 트루먼, 영국 처칠, 중국 쟝제스가 참석한 포츠담회담(1945년 7월)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권고함과 동시에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규정한 카이로선언의 이행을 촉구”하는 공식선언을 재확인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적 노력의 성과였다. 혹자는 우리의 독립이 거저 온 것으로 폄훼하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민족의 독립투쟁으로 획득한 자주독립이 맞다.

현재의 남북분단은 그 비극적 단초가 바로 연합국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미국의 안일한 오판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즉각적인 독립보다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고집했다. 카이로 회담 이후 소련 스탈린을 테헤란으로 초치해 신탁통치안을 제안했고, 스탈린이 잠정적 동조를 끌어냈다. 특히 ‘얄타밀약’에서 미국은 소련의 대일 참전의 대가로 극동지역의 소련 구 영토와 권리를 회복시키기로 했으며, 한국의 신탁통치를 비밀리에 합의해 한반도 분단을 사실화했다. 

1945년 8월 10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제의하자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군사적인 관점에서 북위 38도선 이북에는 소련군이, 이남에는 미군이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항복을 접수하기로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38도선은 당시 러스크 대령과 번스틸 대령이 한반도 내 미군점령지역을 너무 많지 않도록 하고, 수도 서울은 미군점령지역으로 하는 것으로 소련의 저의(底意)를 모른 채 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스탈린의 속셈에는 38도선을 ‘남진정책(南進政策)’을 실현하기 위한 공산화 전진기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의 없이 수용하는 듯한 기만전술로 미국을 속인 것이다. 미국은 소련의 한반도 공산화 전략전술에 기만당한 귀책론(歸責論)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남북분단은 소련의 의도된 야욕임에 틀림없더라도 미국은 소련을 제대로 파악하고 한국민의 운명이 좌우되는 정책에 대한 책임 있는 결정을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최근에 북한비핵화를 위한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지난 5월 18일 북한의 비핵화방식에 대해 “북한의 경우에는 김정은이 자신의 국가에 있고 이를 통치할 것”이라고 ‘북한체제보장론’을 직접 언급했다. 이러한 트럼프의 발언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합리한 오류와 왜곡이 내재된 제2의 얄타회담을 하려는 정치적 발언으로 심각한 항의를 해야 한다. 우선 북한의 체제보장은 평화적 통일에 관한 헌법적 가치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적 목표와 가치가 평화통일에 있다는 원칙을 모르는 미국 트럼프가 할 수 있는 실수인 것이다.

헌법 제4조에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주의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추진하도록 돼있다. 헌법 제66조는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해 북한과는 특수관계로서 평화적 통일의 대상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북한체제보장 운운은 분단을 영구화하는 대한민국 헌법위반이다. 따라서 트럼프는 한반도를 비핵화하면 남북한의 염원인 평화적 통일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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