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공연사진. (제공: 오디컴퍼니)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27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공연사진. (제공: 오디컴퍼니)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27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13년 동안 고수해온 윤간 장면 수정

“전보다 거부감 줄었다” 후기 이어

적절치 못한 단어 사용 아쉬움 남아

넘버, 내용과 조화 이뤄 뇌리 각인

[천지일보=이혜림·지승연 기자]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을 포기하는 것이야.”

어렵고 힘든 현실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고 전하는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가 돌아왔다.

한국에서만 8번째 무대에 오른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스페인의 한 지하 감옥에서 시작한다. 극작가 겸 시인이자 세무서 공무원인 ‘세르반테스’는 교회에 압류 딱지를 붙였다가 신성모독죄로 감옥에 갇힌다. 세르반테스는 종교재판에 오르기도 전에 다른 죄수들에게 재판을 받게 된다. 그는 자신을 변론하기 위해 라만차에 사는 노인 ‘알론조 키하나’의 이야기로 즉흥극을 펼친다.

알론조 키하나는 기사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어 자신을 기사 ‘돈키호테’로 착각하고, 시종 ‘산초’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 모험을 떠난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이라고 생각하며 다짜고짜 달려들고, 여관을 성이라고 하는 등 기이한 모습을 보인다. 또 그는 밑바닥 인생을 사는 여관 종업원 ‘알돈자’를 아름다운 여인 ‘둘시네아’라고 부르며 무릎을 꿇는다. 사람들 모두가 돈키호테를 미친 노인이라고 무시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을 소중하게 대해주는 돈키호테의 진심에 감동받은 알돈자는 희망을 품지만 끝내 노새끌이들에게 처참히 짓밟히게 된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공연사진. (제공: 오디컴퍼니)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27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공연사진. (제공: 오디컴퍼니)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27

스페인의 대표 문호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은 인간의 이상과 현실을 절묘하게 묘사해낸 명작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1965년 극작가 데일 와써맨의 각색으로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공연됐다. 이후 현재까지 5번이나 리바이벌되면서 브로드웨이에 올라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초연됐다.

‘맨 오브 라만차’는 초연 이후 수많은 한국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알돈자가 5명의 노새끌이에게 겁탈당하는 장면은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성행위를 묘사했다고 지적받았다. 관객들은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버전에서는 그런 적나라한 연출이 없다는 정보를 접한 후 격분했고, 올해 초에는 ‘미투 운동’의 연장선으로 해당 장면을 삭제해 달라고 제작사에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제작사 오디컴퍼니 측은 해당 장면에 대해 “알돈자가 나락으로 추락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강조하는 장면”이라며 전개상 필요한 부분임을 설명하면서도 “오랫동안 불편하다는 의견이 있었기에 다양한 연령층이 공감하고 볼 수 있도록 수정했다”고 밝혔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공연사진. (제공: 오디컴퍼니)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27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공연사진. (제공: 오디컴퍼니)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27

그렇게 한국 무대에 다시 오른 작품의 뚜껑을 열어보니 해당 장면은 폭력 신으로 바뀌었다. 개막 이후 관객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여전히 집단 성폭행을 연상케 하는 연출이 남아있다”며 “그래도 직접적인 표현을 접할 때 보다 불편함은 덜 느껴졌다”고 이전 시즌과의 비교 후기를 올렸다.

수정된 장면이 최상의 연출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으나 인물의 극심한 고통을 표현하면서 관객의 심리적 거부감을 줄였다는 점에서 제일 나은 선택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적절치 않은 단어 선택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알돈자에게 쏟아지는 욕 중 일부는 극의 배경인 17세기 유럽과는 관련 없는 단어다. 문제의 단어는 병자호란 때 오랑캐에 끌려갔다가 고향에 돌아온 여인을 속되게 이르는 우리나라 식 욕으로 여성 포로에 대한 혐오가 내제돼 있다. 손가락질 당하는 알돈자를 표현하기 위해 욕설이 사용될 수 있으나, 우리의 아픈 역사에 대한 배려 없이 마구잡이로 단어가 사용 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공연사진. (제공: 오디컴퍼니)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27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공연사진. (제공: 오디컴퍼니)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27

그럼에도 이 작품은 관객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작품은 극중극 형식을 빌려 ‘현실에 포기하지 말고 꿈을 좇으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관객은 현실보다 상상을 의지하는 이상주의자들을 어리석게 느끼다가 나중에는 그들을 응원하고 같이 눈물 흘린다.

또 내용과 넘버의 조화가 너무나 잘 어우러진다. 작품의 주제곡 격인 ‘이룰 수 없는 꿈(Impossible Dream)’과 ‘둘시네아(Dulcinea)’는 중요한 순간마다 변주되며, 관객의 뇌리에 박힌다. 실제로 인터미션과 공연 후 극장을 나서며 두곡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관객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날 기자가 본 공연에는 배우 홍광호(세르반테스·알론조·돈키호테 역), 윤공주(알돈자·둘시네아 역), 이훈진(산초 역) 등이 무대에 올랐다. 홍광호는 청년 세르반테스와 노인 돈키호테를 오가며 어색하지 않은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골골거리는 노인의 목소리로 넘버를 소화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윤공주 또한 힘들어하는 모습 하나 없이 자기 역할에 충실했으며, 이훈진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 관객을 울리고 웃겼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공연사진. (제공: 오디컴퍼니)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27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27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공연사진. (제공: 오디컴퍼니)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27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27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이야기가 주는 울림이 강한 작품이다. 이런 작품의 기본 뼈대는 유지하되 시대와 관객의 요구에 어떻게 응답할지 앞으로의 연출 변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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