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량리에 거주하는 어르신과 이야기 중인 기획단 (사진제공: 농촌문화기획단)

농촌문화기획단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농촌봉사활동(농활)이 점점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일손을 돕는 것이 아닌 젊은 봉사자가 자신의 재능을 농촌 어르신들에게 선보여 기쁨을 드리고 있다. 아울러 일회성으로 그치는 기존 농활과 달리 봉사자들은 월 1회 같은 농촌마을을 방문해 어르신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농활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이들은 바로 농촌문화기획단(기획단, 총괄프로젝트매니저 류재현)이다.

기획단 사무실은 젊은이들의 거리인 홍대에 위치한다. 그곳에서 다음 봉사활동을 기획하느라 여념이 없는 청년들과 이들의 정신적 지주인 류재현(45) 총괄프로젝트매니저(총감독)를 만났다.

대학생들 위주로 구성된 기획단은 자신들이 꾸미는 일을 농활이 아닌 ‘문활’이라 부른다. 문활은 농촌문화봉사활동의 줄임말로 대학생들이 글·사진·영상과 같은 각자 다양한 재능을 농촌문화에 더하는 21세기형 농촌봉사활동을 뜻한다.

농림수산식품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첫 공동 협력 사업인 문활은 이 활동은 젊은이들이 재능을 나누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농촌·전통문화를 배울 수 있어 눈길을 끈다. 류재현 총감독은 “고령화와 낮은 소득수준 등 농촌의 고질적 문제를 젊은이들과 함께 문화적으로 풀어나가고 싶다”며 “젊은 세대는 옛 것을 배우고 지역주민은 지역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떠나요 인량리로~

기획단은 매달 경북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를 찾는다. 인량리는 고려시대 이후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석학과 인물을 배출한 마을로 유명하다. 이 지역은 사람의 거의 손을 타지 않아 자연과 전통이 살아 있다. 이러한 이유로 1400~1700년대에 지어진 한옥이 세월을 훌쩍 넘어도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인량리의 자연과 전통이 한 데 어우러진 모습은 류 총감독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전국 8도에서 빼어난 전경을 지닌 수많은 농촌 가운데 화천 태안 강진 영덕이 최종 후보지로 올랐다. 이 4곳 가운데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가 한옥마을을 좋아하는 류 총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전통과 자연이 잘 보존됐습니다. 아울러 우리나라 5대 명당 가운데 한 곳으로 한 집 건너 한 사람씩 교수 아니면 박사라고 하더군요. 명당이라는 마을만의 특성을 살려 이제 농촌의 문화명당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영덕군 인량리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기획단을 만들어 뜻을 같이할 젊은이들을 모아 실행에 옮겼다.

▲ 농촌문화기획단은 매달 한 번씩 경북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내려가 어르신과 함께 생활한다. (사진제공: 농촌문화기획단)

◆ 21세기형 농활

그의 말을 빌리면 농촌이 직면한 큰 문제는 젊은 일손이 없다는 점이다. 젊은이들은 농촌에 가지 않을뿐더러 관심도 없다. 류 총감독은 어떻게 하면 젊은 친구들이 농촌을 찾을까 고민하던 중 매력적인 마을 분위기를 조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젊음의 문화를 농촌에 녹일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자연스레 농활에 눈길이 갔다.

“젊은 친구들이 농촌을 친근하게 여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죠. 생각 끝에 이들이 풀을 뽑는 것보다 자신의 재능을 살려 농촌에 더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답을 얻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이올린 켤 수 있는 친구가 어르신들 앞에서 연주하는 거죠. 문화적 감성과 능력을 농촌에 이입시키는 게 신개념 농활이라고나 할까요.”

기획단에서 출판팀을 맡고 있는 이정아(26) 씨의 말에 따르면 농촌 어르신들의 일상이 똑같단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오후 1~2시경 마을회관에서 모여 민화투를 친다. “민화투 외에 취미를 배워보지 않겠느냐”는 기획단의 질문에 어르신들은 “나이가 들어 못하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어르신의 답변은 멋쩍은 핑계였다. 어느 자원봉사자가 잠시 DSLR카메라를 평상 위에 두었는데 한 어르신이 만지작거렸다. 이를 본 봉사자는 카메라 사용법을 알려주자 할머니가 조심스레 여기저기를 촬영했단다. 이를 본 기획단은 젊은이들이 농촌에 계신 어르신들에게 더 다가가고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르신들이 다양한 취미생활을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이 모여든다고 했던가. 기획단의 획기적이고 좋은 의도를 알게 된 사람들이 너도나도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참이슬’ ‘아침햇살’과 같은 음료와 주류에 쓰인 멋스러운 글씨의 주인공 강병인 작가도 기획단에 캘리그라피(손글씨 디자인) 선물을 주었다. 아울러 강 작가가 기획단과 함께 인량리에 직접 내려가 어르신을 위한 캘리그라피 시연도 한다.

▲ 해변가에서 점프하는 기획단 (사진제공: 농촌문화기획단)

◆ “할머니가 보고 싶어요”

기획단이 매달 꾸준히 인량리를 찾다보니 어르신들과 각별한 사이가 됐다. 농촌 어르신들이 자녀와 손자손녀를 보는 횟수는 1년 중 평균 3번이지만 이에 비하면 기획단과 어르신들의 만남은 꾸준한 편이다. 적적했던 어르신들은 기획단에 마음 문을 열고 기획단을 따스하게 맞이한다.

기획단에서 취재를 맡고 있는 손소영(25) 씨는 “한 할아버지는 직접 전화해 우리의 안부와 언제 내려가는지를 묻는다.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은 정이 많다”고 말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기획단에서는 1가(家)1손(孫)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과 3~4명의 봉사자들이 한 가족을 이룬다. 기획단은 주로 홀로 또는 내외만 사는 어르신을 기획단이 준비한 공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직접 모신다.

류 총감독은 “당장 많은 1가1손이 이뤄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지만 계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어르신들의 동의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급하게 진행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정아 씨는 “문활에 참여해 보니 1년 전에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생각난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조금 더 살갑게 잘해 드릴 걸’이라는 생각도 든다”며 “이는 기획단에 있는 친구들도 똑같이 느끼는 감정이다. 조부모가 있는 친구들은 문활을 통해 ‘잘해드리자’라는 생각을 하더라”고 말했다.

기획단 활동은 문활과 문화적 효를 만들어 낸 ‘1가1손’ 외에도 농촌 물건 제자리 찾기 운동 ‘농촌살림’을 펼치고 있다. 류 총감독은 “‘1가1손’의 경우는 21세기에 들어와 대한민국이 해왔던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며 “문화로 세대 간을 넘나드는 문화 교류를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행했을 것”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농촌살림’에서 살림은 ‘살림하다’와 ‘살리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기획단에 따르면 이 운동은 사라진 농촌에 있어야 할 물건을 되찾자는 뜻이 담겨 있다.

인터넷 홍보로 많은 젊은이들이 모인 기획단. 모집기간이 끝나도 문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단다. 그만큼 젊은이들이 문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증거다.

기획단은 “올해 5월부터 시작한 터라 아직 채워가야 할 것이 많다. 인량리를 조만간 다시 찾는데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기대된다”고 말을 마쳤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