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언론인 

 

일파만파로 번질 듯하던 한미 무역 분쟁은 동맹국에 대한 배려로 일단 확전의 위기에서는 벗어났다. 그렇다고 우리가 공짜 선물을 얻은 것은 아니다. 그 배후에 혼신의 통상외교노력이 자리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미국은 중국 등 여러 나라의 철강 제품에 매기려던 고율의 관세부과 대상에서 우리의 제품은 제외했다. 동시에 폐기를 위협할 정도로 불만이 컸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우리와 원만한 타협을 이루어냈다. 그럼에도 분쟁의 불씨가 아주 사라졌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고 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제일주의’ 노선 자체에 내재적인 주요 구성요소로서 마찰의 불씨가 살아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두말할 것 없이 자국의 국익을 앞세우는 그 같은 이기적인 노선은 다른 나라와 마찰과 분쟁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치킨게임(chicken game) 양상을 보이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은 적어도 지금 전망으로는 점차 확전이 불가피하다. 괘씸하게도 ‘중국은 국가주도의 경제로 시장을 왜곡하고 미국의 기술과 지적재산권을 도둑질해갔다’는 것이 미국의 대중국 입장이며 날선 감정이다. 중국은 반발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고 이기기 쉽다’며 전의를 불사르며 그에 오불관언하는 자세다. 

이에 짐작되는 것은 미국의 대중 무역제재가 수십조원대의 관세부과와 함께 투자제한, 민감한 첨단 기술 기업에 대한 인수 거부 등과 같은 입체적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렇다고 강대국 관계에서 타협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보이는 중국의 반발의 자세가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면 현재의 작은 싸움은 얼마든지 미중 무역대전(貿易大戰)으로 비화될 징후가 농후하다.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 편에 설 것이 강요돼 극단의 진영(陣營)으로 대립하는 위험천만한 세계 무역대전이 될 조짐도 없지 않다. 이래서 미국과의 무역 분쟁에서 한 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우리 역시 안전지대에 있다고 할 수가 없다. 만반의 싸움 준비, 교섭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미국은 최근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조치들을 연달아 취했다. ‘대만 여행법’이 그중 하나로 ‘양안(兩岸)’ 문제를 불가촉(不可觸)의 핵심이익으로 간주하는 중국의 입장을 정면으로 거슬렸다. 여기에 신장과 함께 분리주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는 티베트의 망명정부 및 중국 내외의 티베트인들과 비정부기구를 지원하기 위한 예산 2200만 달러를 미 의회가 통과시켰다. 중국에 자극적이며 설상가상의 조치들이다. 이런 일들까지 겹쳐 신경이 곤두선 중국이 미국과의 현행의 통상전쟁을 원만히 타결 지으려 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먼저 제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중국은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미국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에 대해서는 망설임도 없진 않다. 그렇다고 자칭 대국이라면서 가만있는 것도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일 것이다. 이래서 그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농업 벨트(farm belt)’에서 생산되는 미국 농산품으로서 중국에 수입되는 것에 대해 보복관세부과를 경고하고 나섰다. 미국 산 대두(大豆)의 경우 연 생산량의 약 3분의 1, 금액으로는 대략 140억 달러어치가 중국에 수출된다. 최후의 결산은 모를지라도 통상전쟁으로 일방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나라는 없다. 그럼에도 주로 중국에 의해 일어나는 막대한 무역적자를 감당할 수 없는 미국은 통상전쟁의 칼을 빼들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 한 해 미국의 전체 무역적자 6, 7천여억 달러 중 대중 적자가 절반이 넘는 3752억 달러에 달했다. 누가 봐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수준인 것이 틀림없다. 다만 이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피해자들이 세계적으로 속출하게 된다는 것이 문제로서 우리가 우려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같은 무역전쟁에 외교 전쟁까지 가세해 세계는 천하대란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있다. 러시아에 의해 영국 땅에서 저질러진 전직 러시아 스파이 독살시도 사건은 급기야 과거 유물인 냉전시대의 NATO 대 러시아의 진영 싸움을 부활시켰다. 미국은 영국에 동조하고 NATO와 연대해 미국 내의 러시아 외교관 48명과 유엔 주재 러시아 정보요원 12명 등 모두 60명에 대해 1주일의 말미를 주어 추방명령을 발표했다. 미국의 조치와 함께 NATO 동맹국과 EU 등 20개국 이상이 동참 120명의 러시아 외교관이 무더기로 추방되는 유례없는 외교전쟁이 불붙었다. 현재의 미중 무역 전쟁이 이 같은 외교 전쟁처럼 진영싸움으로 큰 전쟁으로 비화되지 말란 법이 없다. 세계가 돌연 위험한 격랑(激浪)의 바다가 된 느낌이다. 무역전쟁뿐만 아니라 스파이 독살 시도가 일으킨 외교전쟁 역시 서로 치고 받다 큰 전쟁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원래 국제 정세라는 것이 이처럼 변덕스럽다. 단순하지가 않다. 뜻밖의 일들이 돌발하곤 한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수면만을 봐선 안 되며 물밑도 세밀히 살피고 경계해야 한다. 모든 상황에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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