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언론인 

 

가보진 않았지만 남측 예술단과 북측 삼지연관현악단이 의기투합해 평양에서 개최한 남북 협연 ‘봄이 온다’의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고 전해진다. 북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까지도 남측 유명 가수들의 열창에 감동해 ‘가을이 왔다’는 제목의 앙코르(ancore) 가을 공연을 제안했을 정도라고 한다. 공연장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져 통제된 종전의 모습만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북측 관중들이 주체하지 못할 만큼 뜨겁게 달아올랐었던 것 같다.

이처럼 북측 청중들을 열광케 한 최근의 남북 협연과 같은 남북 문화예술교류는 그 자체로서 큰 가치를 지닌다. 금상첨화이기로는 이 같은 남북 교류가 끊이지 않고 통일의 날을 맞을 때까지 이어지는 경우다. 그렇긴 하지만 북측의 방남(訪南) 공연에 이은 이번의 평양협연은 한반도에서의 평화냐 전쟁이냐를 결판낼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군불지피기로서의 의미가 각별하다.

지금까지는 피차 새삼 ‘핏줄’의 체온을 느끼며 군불지피기를 무난히 잘 해왔지만 그렇다고 바람 앞의 촛불을 보는 심정에서 우리는 자유스러워질 수가 없다. 그것은 관계국 사이의 물밑 교섭 상황은 알 수 없으되 북의 비핵화 의지와 방법에 관해 가시적이며 구체적이고 확실한 것이 어느 관계국으로부터도 나와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에 시간을 벌어주지 않기 위해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오스 매듭(Gordian knot)’을 단칼에 잘라버렸듯이 북의 비핵화문제를 단박에 해결하려는 욕심이 강하다. 이에 대해 북의 입장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며 북미정상회담을 중재하는 우리의 입장은 애매모호하다.

우리의 입장 역시 고르디오스 매듭 자르듯이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사정이 다른 나라들과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북과는 물론 주변 이해 관계국들과 함께 가지 않을 수 없는 특수한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 우리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미답(未踏)의 길인 북 비핵화의 종점(destination)을 향해 가는 협상 도정(道程)은 그야말로 모험의 과정이어서 유동적이고 안정적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바람 앞의 촛불을 보는 심정으로 봐지는 것이 당연하다. 더구나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조성하는 격동의 흐름에서 소외되지 않으려고 끼어드는 주변국들의 간섭적(intrusive)인 태도가 정세의 전망을 더욱 불확실하게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 시진핑 주석과 만난 것은 그로서는 그것이 후방을 안정시키는 것이기도 하지난 보험(保險)에 드는 길이기도 했다. 시진핑이 그에게 ‘북중은 피로 맺은 혈맹’이라며 ‘전통적 우의를 영원히 다져나가자’는 말을 했을 때 유일한 멘토(mentor) 중국과의 불화로 가슴앓이를 하던 노심초사가 눈 녹듯 녹아내렸을 것이 틀림없다. 그는 모르긴 모르지만 러시아 푸틴과도 만날지 모른다. 이처럼 그는 이들과 만남으로써 고무될 것이 분명하지만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은 그만큼 더 미묘해지고 복잡해질 개연상이 농후하다.

중국은 원래부터 그들의 이익에 맞게 협상 조건을 비틀어 북의 핵 및 미사일 개발 활동과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동시에 중단하는 이른바 쌍중단(雙中斷)을 되풀이 주장하며 단계적인 비핵화 방법론을 제안해왔었다. 그것은 한반도 정세의 인과(因果)관계를 착각한 괴상한 제안이며 우리의 사드(THAAD)배치에 몽니를 부린 것과 같은 일방적인 고집으로서 한미동맹의 입장과 어긋난다. 시진핑은 중국을 방문했던 미국의 미 트럼프 대통령보다도 더 극진히 김정은을 환대하면서 ‘비핵화’ 얘기를 꺼낸 것으로는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그 방법론으로서 한미동맹의 입장과 어긋나는 단계적이며 시간이 지체되는 선택에 의견을 같이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단계적인 비핵화는 단계마다 보상이 따른다. 그렇기에 협상과정에 불만이 생길 때 또는 협상을 그만두고 싶을 때 아무 때나 회담장을 뛰쳐나갈 출구가 항시 열려있게 된다. 더 말할 것 없이 이런 방법은 지금까지 북이 해왔듯이 협상 상대를 기만하고 핵을 고도화할 시간을 벌려할 때 유용하다. 바로 이 점이 단박이 아니라 시간을 질질 끄는 비핵화 방법론을 경계하는 까닭이다. 만약 김정은이 이런 방법론에 꽂혀 있다면 시진핑이라는 강력한 우군을 얻음으로써 그 주장을 더더욱 굽히려 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만큼 비핵화회담은 어려워진다.

앞으로 1~2개월은 평화냐 전쟁이냐와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무위에 그친다면 한반도 정세는 급전직하, 과거보다 더 위험한 지경에 빠져들기 쉽다. 따라서 우리 운명의 핵심주체들인 남북 당국은 주변국의 원심력에 휘둘리기보다 냉철하게 오로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서로 손을 꽉 잡아야 한다. 주변국들 역시 한반도의 평화가 그들에게도 번영의 기회가 될 수 있으므로 회담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더 길게 설명할 것이 없다. 남북 협연의 군불지피기는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그 효험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으로 열매 맺어지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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