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너무 상쾌한 질주가 의아할 지경이지만 북핵 외교에서 한국이 확고히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것만은 진하게 실감이 난다. 북의 비핵화의지를 학인 받으면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3.5 합의’로 한국은 일거에 외교주권을 회복했으며 세계 외교의 중심에 우뚝 섰다. 이런 일이 언제 우리 역사에 있었던가. 솔직히 유례를 찾기 어렵다.

한국 대통령의 특사들이 폐쇄의 왕국 북의 심장 평양에 들어가 이루어낸 외교적 성과는 금방 세계에 상상 밖의 놀라운 뉴스로 전파됐다. 미국 CNN을 비롯한 일본 영국 등 세계의 거의 모든 유력 언론 매체들이 이를 한국의 탁월한 외교 역량이 일구어낸 괄목할만한 성과로 집중 부각시켰었다. 특히 영국의 대표 방송인 BBC는 ‘잘 되면 문재인 대통령이 노벨상을 탈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외교특사들이 평양에서 일군 그 같은 성과는 그들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것과 같은 민감한 사안들이었다. 지금도 저들은 한국 특사외교의 성공이 세계의 각광을 모으는 가운데에서도 선전매체들을 동원해 ‘핵 무력은 정의의 보검이며 핵이 없어지면 사담 후세인처럼 된다’고 외쳐댄다. 이것이 보여주는 것은 핵에 대한 못 말릴 집념이다. 이런 폐쇄적인 집념의 빗장을 열어젖힌 것이 문 대통령이 보낸 우리의 외교 특사들이다. 이들은 저들의 깊은 심중에 꼭꼭 숨겨졌던 온갖 얘기들을 허심탄회한 분위기 속에서 속속들이 듣고 왔다.

팔팔 살아있는 정보인 이런 내밀한 얘기에 가장 목이 타는 것은 주변 열강들이다. 그들은 그 같은 얘기를 귀동냥이라도 하려는 듯 우리에 매달린다.

충분히 이해가 가거니와 그동안 그들은 북의 정보에 심한 갈증을 느껴왔다. 그런데 주변 열강들이 우리에 매달리는 이런 일이 언제 있었던가. 그동안 우리는 주변 열강에 끌려 다니기 바빴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정보를 얻으려 애써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참으로 극적이며(dramatic) 통쾌한 반전(反轉)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외교 무대의 ‘주역’이 된 것이다. 더는 조연이 아니다. 이는 우리의 노력이 일구어낸 외교 드라마로서 처음 맛보는 외교 주역이 누리는 ‘특권’과도 같다. 이것이 바로 고도의 지혜와 역량이 발휘되는 외교의 힘 아닌가. 운전대를 잡은 주권외교의 힘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이런 주권 외교의 힘은 남과 북이 의기투합한 결과물이라는 것, 다시 말하면 우리 민족의 문제를 분단된 남과 북이 힘을 합해 자주 자결로 풀려했기에 얻어질 수 있었던 성과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번 ‘3.5 합의’는 남과 북이 주변 열강에 휘둘리지 않는 민족외교의 성공 가능성을 개척한 중요한 선례와 전범(典範)을 남긴 것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도 우리는 궁극적인 민족통일을 지향해 가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두 달 사이에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연이어 개최되면서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며 이 기회를 제대로 살려내느냐의 여부에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했다. 그는 덧붙이기를 “결과에 대해 낙관도 어렵고 과정도 조심스럽다”면서 그렇지만 이 기회는 “정권 차원이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차원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너무나 중요한 기회”라고 했다. 이 말에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야말로 지금은 우리가 이 나라 이 민족의 주인으로서 우리 운명의 운전대를 끝까지 틀어 잡고갈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이런 순간에 대통령 스스로 당부하고 있거니와 이념과 진영을 초월하고 국력과 국론을 하나로 모으는 우리 내부의 단합이 전제돼야 우리의 뜻과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역이 됨과 동시에 세계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믿어진다. 그런 의미에서도 북을 설득하는 데 더욱 빈틈없는 노력을 기울여 한반도 문제로 우리 모두가 주변국들의 원심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3.5 합의’를 설명하러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간 우리 특사들이 각광을 받으며 전례 없는 환대를 받았다. 그들은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 우리 특사들을 장시간의 면담이나 만찬 등으로 물고 늘어졌다. 미국 백악관 방문도 트럼프 대통령의 재촉으로 시간이 앞당겨진 것이며 중국의 시진핑 주석 역시 ‘양회(兩會)’의 바쁜 정치행사에도 파격적으로 우리 특사들을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특사들의 ‘평양 합의’에 관한 설명을 듣고 꽤나 들떴던 것 같다. 북미정상회담 제안에 대한 동의를 면담자리에서 즉흥적으로 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황제를 닮아가는 시진핑 역시 특사를 만나 “한반도의 비핵화와 부전(不戰) 불란(不亂)을 바라는 일관된 중국의 입장에 비추어 한국정부가 기울인 노력을 적극 평가한다”며 “향후 비핵화 협상에서 중국도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의 발언은 ‘차이나 패싱’을 우려해 중국의 협상 참여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 같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이 외교의 운전대를 잡자 이들이 불안해졌다. 협상과정에서 소외될까봐 그렇다. 일본은 한국 외교가 이런 성공을 거두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것 같다. 그들은 아베가 트럼프를 만나러 간다는 등 몹시 허둥댄다. 이쯤 되면 우리는 이들 사이에 옹색하게 낀 나라가 아니라 어엿한 중심이며 주역이다. 그렇더라도 비핵화외교는 갈 길이 멀고 험난함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비관이나 의심보다는 차라리 낙관의 자세로 가는 데까지 힘차게 나아가는 것이 옳다. 대통령 말마따나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