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홍윤숙(1925~2015)

 

나이를 알아보고
내어주는 자리가 면구스러워
일부러 고개 푹 숙이고
잠들어 있는 사람 앞에 선다
저만치서 미안한 듯 주춤주춤 일어서는 
젊은이에게
나는 머리를 들 수가 없어
줄곧 고개 숙이고 앉아 있다
그대의 탓이 아닌 나의 탓으로
나이 먹어 늙은 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남의 자리 빼앗아 편히 앉다니
세상에 이런 빚도 지고 가는구나
쓸쓸한 자책에 고개 돌린다
  
어두운 차창에 희미하게 어리는
검은 눈동자 낯선 얼굴 누구였던가
알 수 없는 길 위의 이방인이 된다
 

[시평]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자연스러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가 들게 되면, 자연 나이든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지니는가 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그 나이를 대접해주기도 한다. 특히 유교적 관습이 오랫동안 배어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의 어린 시절 이러한 유풍이 그래도 남아 있어, 연세가 든 어른이 버스에 올라오면 자동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양보를 하곤 했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이런 유풍들이 우리 사회에서 없어졌다. 그러나 요즘에 들어 다시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나이가 들어 자리를 양보 받으면, 일견 좋기도 하지만, 일견 씁쓸하기도 하고, 또 민망하기도 하다. 나이가 무슨 벼슬이라고, 자리나 양보를 받나 생각하면 그렇다. 내가 양보 받을 만큼 무슨 일이나 했나, 하는 자괴감도 든다. 다만 나이만 먹었다는 면구스러움. 요즘과 같이 어른다운 어른이 없는 시대에, 세상에 자리 양보의 빚도 지고 가는구나, 하는 쓸쓸한 자책을 지니는 그 분, 아마도 진정한 어른의 그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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