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소장

 

문재인 대통령은 제99주년 3.1절 기념사에서 1919년 당시 전국 방방곡곡, 중국의 간도와 러시아의 연해주, 미국 등지에서 독립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고 강조했다. 

2017년 말 기준 남북한 총 인구는 7600여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오늘날 재외동포는 세계 178개국 740만명으로 한민족의 약 9.7%가 해외에 살고 있다. 중국의 경우 총인구 14억명에 화교가 6천만명 정도이니 한족(漢族)의 약 4.3%가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이유야 어떻든 우리 겨레는 그만큼 많은 인구가 모국을 떠나 외지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식 이민은 1902년 조정에 수민원(綏民院)이 건립되고 다음해인 1902년 하와이로 이주한 것이 처음이다. 그러나 실제 교포의 최초 이주는 1860년 러시아의 연해주로 한인들이 이주하면서 비롯됐다. 그 후 1869년에는 흉년으로 많은 농민들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일제를 타도하기 위한 우국지사들이 연해주와 북간도로 대거 이주하게 됐다.

러시아에서는 고려인을 ‘까례야(Корея)’라고 부른다. 이는 영어의 코리언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그냥 한국인이란 뜻이다. 고려인이란 호칭은 연해주에 사는 동포들이 조선인이라고 하면 남한에서 싫어하고, 한국인이라고 하면 북한에서 싫어하기 때문에 고려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려인들에게 무서운 시련이 다가왔다. 연해주 한인들의 항일 독립운동이 일본에게 대소(對蘇) 선전포고의 구실을 줄 것을 우려한 스탈린 정부는 1937년 9월과 10월 사이에 연해주 한인 17여만명을 가축을 싣는 화차에 실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시켰다. 이동 중에 많은 고려인들이 희생됐지만 이주한 고려인들은 우리 민족의 근면성을 발휘해 척박한 땅을 개간하고 농토를 일구어 3년 만에 정착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여 현지인들로부터 독립국가연합에 거주하는 127개 민족 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소수민족이라고 칭송을 받고 살아왔다. 

그런데 강제이주보다 더 큰 시련이 또 다시 고려인들을 엄습했다. 그것은 바로 1991년 일어난 소련의 해체였다.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14개 국가에서는 소수민족을 차별하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나타났고, 우즈베크어와 카자흐어를 하지 못하는 고려인들은 그들이 일하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밀려났다. 그들은 다시 연해주나 한국으로 이주를 시작한 것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말했듯이 고려인은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니며 우리 동포인 것이다. 이제 그들이 겪는 아픔을 우리가 껴안아 주어야 할 때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낮아 고심하고 있다. 이제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연해주로 이주했던 재외동포들을 자신들이 원한다면 대한민국의 품으로 포용하는 성숙된 국민적 아량과 정부 차원의 법적·제도적 조치도 조속히 마련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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