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소장

 

역사적으로 외교의 실패는 전쟁을 유발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해 왔다. 1941년 미·일 외교의 실패 결과로 일본이 진주만 공격을 감행해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다. 지난 7일 펜스 미 부통령은 도쿄의 아베-펜스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도발이 지속되는 점을 지적하면서 “미국, 일본 등 관련국가가 북한의 행동을 ‘외교’로 바꾸려는 시도는 실패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외교가 아닌 그 무엇으로 북한의 호전성을 단절할 수 있다는 말인가? 소위 제한적 선제타격이든 전면전이든 전쟁밖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인지 의아한 생각이 든다.  

지난 9일 평창올림픽 개회식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리셉션을 주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펜스 부통령과 일본의 아베 총리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행사는 예정보다 10분 늦게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행사장 밖 다른 곳에 있던 미·일 두 대표를 찾아가 기념 촬영을 하고 함께 행사장에 들어올 때는 행사 시작 30분이 지난 뒤였다. 펜스 부통령 부부는 행사장에 와 참석자들과 인사만 나누고 준비된 만찬 테이블에 앉지도 않고 5분 만에 자리를 떠났다. 물론 북한의 김영남 상임위원장과는 악수도 하지 않고 나간 것이다. 청와대는 펜스 부통령이 미국 선수단과 저녁 식사 약속이 있어서 나갔다고 했지만 석연치 않은 해명이었다. 

그날 펜스 부통령의 돌발 행보는 외교 의전을 무시한 무례가 아니었나 하는 비판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 백악관 측은 펜스 부통령의 리셉션에서의 행동이 ‘외교결례’라는 주장에 대해 “북한 대표들이 펜스 부통령에게 따뜻하게 접근했다면 펜스는 사교적 인사를 나누며 나이스(nice)하게 대응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펜스 부통령은 방한 전부터 “북미접촉을 하지 않겠다. 북한의 미소외교에 시선을 뺏기면 안 된다”라는 등 강경 발언을 해왔던 점을 감안할 때 리셉션에서의 행보가 다분히 의도적이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지난 6일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자신의 임무는 틸러슨 국무장관 등 외교관들이 외교를 통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매티스 국방장관의 외교적 해결 우선 방침은 북한에 대한 제한적 선제타격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제한적 선제타격론이 외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감행하겠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만약에 그러한 선제타격론이 확실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한반도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며, 동아시아 지역도 핵전쟁의 참화에 노출될 수도 있다.  

이번 평창 리셉션에서의 펜스 부통령의 차가운 태도와 도쿄의 아베-펜스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행동을 ‘외교’로 바꾸려는 시도는 실패했다”는 그의 발언은 외교를 통한 대화보다는 필요할 경우 대북 선제타격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어떠한 경우도 막아야 하기 때문에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다각적인 외교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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