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소장

 

한반도를 적화통일하려 했던 한국전쟁의 목적이 수포로 돌아가자 김일성은 휴전 직후부터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1959년에는 조소원자력협정을 체결했으며, 1965년에는 소련으로부터 원자로를 도입했다. 그러던 중 미국은 1990년대 초 북한의 핵 개발 징후를 포착하고 북미 핵 협상을 시작했다.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조건으로 팀스피리트훈련 중지를 요구했고, 1992~1993년 사이에 5차례의 사찰을 받았으나 미국이 영변지역 특별사찰을 요구하자 북한은 이를 거부했다. 1993년 3월 북한은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북한전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면서 ‘서울 불바다론’을 언급했다. 

그 이듬해인 1994년 6월 카터 전 대통령은 개인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회담하고, 7월 25일 김영삼-김일성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으나, 7월 8일 김일성이 갑자기 사망함으로써 정상회담은 무산됐다. 그러던 중 그 해 10월 21일 북미 제네바합의가 타결됏다. 이 합의는 북한이 핵 개발을 전면 중단한다는 조건으로 2003년까지 북한에 경수로 2기를 건설하고, 경수로 완공 전까지 매년 중유 50만톤을 무상으로 공급하며, 워싱턴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한다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경수로 공사 지연을 빌미삼아 핵개발을 계속함으로써 북미관계는 다시 얼어붙게 됐다. 

그 후 2005년 9월 19일 제4차 6자회담에서 9.19합의를, 2007년 2월 13일 제5차 6자회담에서 2.13합의를 도출했으나 그 사이에 북한이 제1 및 2차 핵실험을 강행해 이들 합의도 모두 무산됐다. 그 이후에도 북한은 제3~6차 핵실험을 계속해 대륙간탄도탄(ICBM)과 잠수함발사탄도탄(SLBM)을 시험발사해 미국을 직접 위협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에 맞서 수시로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거론해 왔다. 그러던 중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베를린에서 북한체제 안전보장, 한반도 비핵화,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체결 등을 제시하는 ‘베를린 구상’을 제시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이에 화답하듯 금년 신년사에서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의사를 밝혔고, 이어서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한 양측 특별사절단이 서울과 평양을 상호방문했다. 평양을 방문한 우리 측 특사에게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를 밝혔고, 남북-북미정상회담도 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 측 특사단이 북한에서 돌아와 미국에 가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메시지를 전하자, 그도 금년 5월 이내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에 열리게 될 남북, 북미정상회담은 한반도의 전쟁 위기상황을 평화와 통일로 이어가는 행운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한미 정상들이 북한의 비핵화를 관철시키기 위해 신중을 기하고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회담을 추진하기도 전에 무용론을 제기하거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는 자제돼야 할 것이다. 2018년에 찾아온 절호의 남북화해 기회를 살려 우리 주도의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계기를 만들어 가도록 국민의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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