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 한국외대중국연구소 연구위원

 

어느덧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됐다. 그것도 지천명의 중반을 넘어가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사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이 대부분 다 퇴직을 하는 나이가 됐다. 특별한 직종과 직업을 가졌거나, 아니면 운이 좋거나 혁혁(赫赫)한 역량을 가진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가 되다보니 모두들 직장에서 나온 것이다. 

학교 다닐 때도 중국 관련학과에서 수학했으며 대만에서 유학을 하고 학위를 받고 모 대기업에 들어간 대학 친구의 전화가 와서 만났다. 만나보고 싶은 친구였는데 너무 반가웠다. 이 친구도 평생을 중국 관련 일을 했고 중국에서 책임자로 일하다가 작년 말로 퇴사를 한 것이다. 점심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2시간 반 이상을 정말 오랜만에 만나 얘기할 수 있어 좋았다. 뭐니 뭐니 해도 근황과 자식 얘기가 먼저 시작되더니, 그 버릇 어디에 못 버린다고 중국에 관한 얘기가 빠지지 않고 장시간 이어져 갔다.

대기업에서 배우고 경험한 노하우를 살려 1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법인의 대표가 되어 한국과 중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계속 중국을 관심 있게 보고 연구하고 가끔씩 다녀오지만 친구만큼 자주 갈 수도 없는 것이고, 속칭 피 튀기는 비즈니스 경쟁을 매일매일 하는 것이 아니기에 친구에게 질문할 것이 많았다. 야! 요즘 중국은 어때? 사드 이후 분위기는 좀 어때? 초기와 지금의 비즈니스 환경은 어때? 궁금한 상황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한 달에 몇 번씩 중국에 가 산업현장에서 부딪치면서 살아가는 친구의 음성을 현실감 있게 듣고 싶어서 질문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초기에 처음 중국에 가서 시작할 때 환율이 달러당 800대에서 시작돼 IMF구제금융을 받게 되면서 2000원대에 육박한 것도 경험하고, 현재 중국돈의 상대적 평가절상을 얘기할 때 최소한 한국 원화가 100% 이상 중국 인민폐인 위앤화에 평가절하된 상황을 얘기 나눌 때는, 한국이 그만큼 경쟁력과 경제적 위상이 중국에 낮아지고 있다는 현실을 새삼 직시하게 됐다. 현재 우리의 위치를 냉소적으로 표현하는 단계에 가서는, “지금 화장품만 인기 있고 경쟁력이 있는 것 같다”는 자괴적인 말까지 나왔다. 물론 아직까지 경쟁력 있는 반도체 얘기도 했지만 그것이 얼마 못 갈 것 같다는 말을 할 때는 잠시 상호 침묵하기도 했다. 중국이 열심히 노력해 종합국력을 신장 시킨 것을 알면서도 구체적으로 경제적 상황과 현 위치를 인식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시간들은, 이 중국을 앞으로 어떻게 다루고 경쟁에서 이기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가야 할지 등 끊임없는 과제들이 산적해 있음을 진정 재삼 느끼게 된 것이다.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보다가 작년 통일연구원이 외교부에 의뢰해 조사한 ‘중국인 눈에 비친 한국인은 어떠한가’라는 보고서를 보게 됐다. 사드 이후에 변화상을 보는 데 중점을 둔 조사 보고서이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드문제 발생 시를 기점으로 후대의 역사가들은 아마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의 인식의 대변환시점으로 살 공산이 크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인의 22.6%만이 한국인을 믿고 있고 77.4%는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나마 한국인들을 많이 접하는 중국인들은 한국인에 대한 신뢰도가 높게 나왔다. 그런데 여론조작에 쉽게 노출되는 중국인민 대중들은 약 80%가 한국인을 믿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다. 70% 이상은 중국인에게 한국인이 우호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확한 최근 조사는 없지만 아마 한국인도 90% 이상은 중국인을 믿지 않을 것이다. 

한·중의 간극을 좁혀 나가야 하는데 더 벌어지고 있다. 국방은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이고, 경제력은 수교 이후 조금 인정해 주었는데, 종합국력이 성장한 중국은 한국을 속된말로 깔보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이 한국을 믿지 않고 더욱 무시할 소지가 있는데 우리의 대응카드가 있어야 한다. 다시 한번 초기의 중국 진출 정신과 죽기 아니면 살기로 찾으면 대응카드는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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