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지헌 기자] 용산 참사 9주기인 20일 오후 재개발을 앞둔 서울 성북구 장위동 장위7구역에서 한 폐점한 정육점 가게 앞에 ‘우리는 왜 쫓겨나야만 하나요’ 문구가 붙어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20
[천지일보=김지헌 기자] 용산 참사 9주기인 20일 오후 재개발을 앞둔 서울 성북구 장위동 장위7구역에서 한 폐점한 정육점 가게 앞에 ‘우리는 왜 쫓겨나야만 하나요’ 문구가 붙어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20

“제2의 용산참사로 이어질까봐 하루하루 불안”

“국가도 경찰도 아무도 우릴 보호해 주지 않아”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저희 같은 경우는 ‘강제 집행’ 당하면 그대로 노숙자 되는 거예요. 현관문 잠금장치를 망치로 때려서 부시고, 거실 창문 방충망을 뜯어내고 그야말로 집이 아니라 전쟁터였죠. 지켜만 보고 있는 경찰을 원망한 적도 많아요.”

20일 오후 서울 성북구 장위동 7구역 재개발지역에서 만난 조한선(가명, 58, 남)씨는 ‘강제 철거 집행’ 당시를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집 현관과 창문 등은 기습 철거를 막기 위해 덧댄 나무판자로 인해 낮이었음에도 밤 같이 깜깜했다. 집 담벼락에는 물건을 쌓아 올렸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9주기를 맞았지만, 철거민들은 여전히 폭력적인 강제 철거 집행에 노출돼 있었다. 이들은 “국가도, 경찰도 아무도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날 기자가 찾은 장위동 재개발 골목은 인적 하나 없이 고요했다. 골목마다 유리창이 깨져 안이 훤히 보이는 집들은 ‘철거’라고 적혀있었고 거리는 유리조각과 쓰레기로 발 디딜 곳이 없었다. ‘2층에 사람이 살고 있어요’ ‘거주중’ 이라는 팻말이 아직 동네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유일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천지일보=김지헌 기자] 용산 참사 9주기인 20일 오후 재개발을 앞둔 서울 성북구 장위동 장위7구역에서 한 시민이 철거라는 글씨가 새겨진 골목길을 걷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20
[천지일보=김지헌 기자] 용산 참사 9주기인 20일 오후 재개발을 앞둔 서울 성북구 장위동 장위7구역에서 한 시민이 철거라는 글씨가 새겨진 골목길을 걷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20

서울시가 ‘겨울철 강제집행’을 금지했지만, 지난해 11월부터 조씨의 집에는 수차례 철거 용역업체 인력이 들이닥쳤다.

그는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가만히 있었다”며 “집사람이 가서 문이 안 열리도록 붙잡고 저항을 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강제 철거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조합에서 주는 보상금으로는 이사 갈 집이 없다. 막막하다”며 “그저 내 돈을 온전히 돌려받고 싶을 뿐”이라고 호소했다.

앞서 약 1700세대가 모여 살던 장위 7구역은 지난 2013년 재개발사업시행인가 고시가 나 지난해부터 철거가 진행됐다. 현재 가옥주 4가구와 상가 세입자 등 6가구가 남아있다.

장위동에서 거주한 지 47년째라는 심석구(남)씨 역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용역업체로 인해 옷장 등으로 모든 창문과 현관을 막아 놨다. 집 곳곳에는 폐쇄회로(CCTV)를 직접 설치했다.

[천지일보=김지헌 기자] 용산 참사 9주기인 20일 오후 재개발을 앞둔 서울 성북구 장위동 장위7구역에서 아직까지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리는 팻말이 붙어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20ⓒ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20
[천지일보=김지헌 기자] 용산 참사 9주기인 20일 오후 재개발을 앞둔 서울 성북구 장위동 장위7구역에서 아직까지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리는 팻말이 붙어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20ⓒ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20

심씨는 “집이 아니라 전쟁터다. 요즘에는 잠도 안 와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이 든다”며 “용역업체 직원이 계속 집주변을 돌면서 집이 빌 때를 기다리며 감시하고 있어서 집도 비우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다 용산 참사와 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까봐 하루하루 불안하고 떨린다”고 토로했다.

인근에서 세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는 구연선(가명, 여, 52)씨는 “갑자기 들이닥친 용역업체에 놀라서 등유통과 라이터를 들고 옥상에 올랐다”며 “용역업체 직원들과의 몸싸움으로 인해 몸에 큰 피멍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합장이 먼저 나서서 조율하려는 성의라도 보여야 하는데 그마저도 아니니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본지는 이와 관련한 조합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편 철거민들은 지난 2일 장위동 개미약국사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가 동절기 강제철거를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합은 수시로 강제집행, 강제철거를 벌이고 있다”며 철거민들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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