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새해를 맞은 지난 일주일 동안, 남과 북은 분단이후 몇 가지 기록을 수립하고 있다. 첫 번째로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분단 70년 만에 최초로 상대방인 대한민국의 평창올림픽에 대해 찬사를 보내며 성공적인 기원을 약속하고 있다. 과연 지금껏 남과 북이 상대방 체제의 이벤트에 대해 공식적으로 찬사를 보낸 적이 있느냐 볼 때 이야말로 파격이 아니고 그 무엇이란 말인가.

둘째로 남북대화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대화 장소와 대표단 구성에서 상대방의 방안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특히 그동안 대화 상대의 격을 놓고 옥신각신하던 자세를 훌훌 털어버리고 선뜻 받아들이는 모습은 성숙된 포용으로 벌써부터 대화에 기대감을 잔뜩 높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주변국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먼저 중국의 태도부터 살펴보자. 지난 1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대남(對南) 화해 제스처’를 보인 가운데, 북·중 동맹의 균열은 갈수록 깊어진다는 분석이 미국 외교전문지인 포린폴리시(FP) 신년호에 실렸다. 중국 인민해방군 내에서는 “한국전쟁이 재발하면 인민해방군은 북한군을 돕지 않고 오히려 억압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고 FP는 전했다. FP는 1·2월호에 ‘중국이 북한을 돕지 않을 이유(Why China Won't Rescue North Korea)’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기고문의 저자는 오리아나 마스트 조지타운대 교수. 이 기고문에서 그는 “북·중 동맹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out of date)”고 진단했다.

기고문에 따르면 북·중 관계는 근래 들어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악화됐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이 한반도에서 도발한다면 조·중 상호원조조약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the 1961 treaty will not apply)”이라고 수차례 공언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 조약은 북한과 중국 중 한 곳이 제3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상대국을 돕도록 명시한 조약이다. 지난 10년간 중국을 오갔던 마스트 교수는 현지에서 “조·중 상호원조조약을 이행해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나 정책결정자, 군인을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이미 인민해방군에서는 북한에 대한 여론이 얼어붙고 있다. 인민해방군 장교들은 “제2의 한국전쟁이 벌어진다면 중국은 북한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있다”며 “북한군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억압하려고 들 것”이라 밝혔다고 마스트 교수는 전했다. 그는 기고문에서 ‘제2의 한국전쟁’이 벌어진다면 중국이 반드시 개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코너에 몰린 북한이 핵무기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한국군이 북한 내 핵 시설을 선점하지 못하도록 막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에서는 핵 무장을 지지하는 여론이 상당히 높다고 그는 밝혔다. 실제로 최근 중국 현지 전문가들 사이에선 '제2의 한국전쟁’을 염려하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

스인훙 인민대 교수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근래 들어 가장 높아졌다”고 강조했고, 왕훙광 예비역 중장도 “언제라도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포스트 김정은 시대’, 즉 ‘통일 한국’을 대비하고 있다고 마스트 교수는 진단했다. 단, 한반도 통일은 중국의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신년사 후 중국은 발 빠르게 제재의 강도를 높여 유류제품과 기계류 수출품목에 대해 다시 제재를 단행했다. 미국의 태도는 어떤가?

매파가 득실거리는 백악관 내 참모들과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순발력 있는 남북대화 지지에 못마땅함을 감추지 않으면서 대화는 환영하되 북한의 평창 이후의 태도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러시아와 일본 역시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특히 일본의 대북전문가들은 “이제 북한 비핵화는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북방과 해양으로부터 완전 고립된 북한이 남쪽으로의 진출에서 출구를 찾는다면 그동안의 제재 효과가 물거품 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이다. 한반도 주변국들이 겉으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원하지만 내심으로는 그 반대란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 비핵화의 덫에 걸려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고립의 언덕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현재의 역동적인 변화가 단지 스포츠의 이벤트에 머물지 않고 남북정상회담으로까지 발전해 한반도의 대변혁으로 나타나기를 기원하고 싶다. 이왕 시작된 회담, 아예 평창을 넘어 평양으로 이어져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평창과 평양이 만나 평화를 이루는 3평의 기적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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