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단지 유명해서만은 아니다. 탈북 64년(1953. 7. 27) 역사에 오청성 병사처럼 불과 몇 초 차이를 두고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 탈북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웅평 대위(1983년)는 불과 몇 리터의 연료를 남겨둔 채 간신히 수원 비행장에 착륙해 자유의 품에 안겼다. 또 2년 전 강○혁 하사는 북한군 개성공단 경무대 소속으로 판문점 근처에서 달려드는 상관 2명을 사살하고 자유의 품으로 달려왔다. 또 1970년대 중반 김부성은 서부전선 제3땅굴 공사 진지에서 탈출해 땅굴을 찾아다니다 지뢰까지 밟았지만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김만철씨는 꼭 30년 전인 1987년 일가족 11명을 이끌고 검푸른 태평양을 항진해 일본 쓰루가항에 안전하게 정박하면서 자유에로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이들의 역동적인 지옥으로부터의 탈출 과정을 안타깝게도 지켜볼 수 없었다. 모두 은밀하게 숨어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숨 막히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오청성 하사는 달랐다. 우리 모두는 유엔군사령부의 감시 카메라라는 스크린을 통해 오청성 병사의 자유를 향한 노도같은 질주를 한 편의 드라마처럼 지켜 볼 수 있었으니 이야말로 북한 2400만 동포 모두의 자유에 대한 열망과 대탈출의 드라마가 아니고 그 무엇이란 말인가.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오청성 병사의 사력을 다하는 질주를 보며 오늘날 북한 동포들이 얼마나 감옥 아닌 감옥에서 살고 있는지, 또 자유를 갈망하고 있는지 뼈저리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청성 병사에게 찬사와 함께 뜨거운 격려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루 수천대 비행기가 수많은 영토를 가로지르는 세계화 시대에 국경이 곧 ‘죽음의 경계선’인 나라는 북한밖에 없다. MDL(군사분계선 military demarcation line)과 국경은 사선(死線)인 것이다. 국경 안에는 삶 같지 않은 삶이고, 국경 밖으로 나가는 담장은 생사의 갈림길이다. 탈북은 사선을 넘는 행위, 신생(新生)을 향한 극단의 모험이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은 줄잡아 3만여명, 이들이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는지 남한인은 잘 모른다. 정착금 1500만원에 적응생활비 600만원이 고작이다. 일용, 임시직 건설노동자가 많다. 얼마 전 인기프로 ‘나는 자연인이다’에 탈북민이 출연했다. 먹고사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사실, 탈북의 목적지가 반드시 남한인 것은 아니다. 체제의 구속을 벗어나 자기 인생을 꾸리는 곳이면 어디든지 좋다는 게 탈북민의 일반적 심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밖에’ 나와 보면 갈 곳이 마땅치 않다. 결국 남한으로 발길을 돌린다. 

“남한이 맞습니까?” 의식을 회복한 병사의 불안한 첫마디로 미뤄 그의 최종 목적지는 남한임이 틀림없다. 만신창이가 된 몸, 사선을 넘는 비용은 엄청났지만 TV 연예프로를 보고 걸그룹 노래를 들으며 만끽할 삶의 냄새가 그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것이다. 치명상 환자를 치료하는 중증외상전문의 이국종 교수가 이번에도 생명의 조타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오청성 병사는 벌써 응급실을 벗어나 육군통합병원으로 호송됐다. 오청성 병사가 우리에게 전해준 것은 북한 주민들과 군인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만이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 나온 기생충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북한에서 회충구제 기간이면 자기 담당 구역 관내의 인민반과 집단 숙박업체들(호텔, 여관, 대학교, 근로자 합숙소 등)에서 “회충증을 미리 막자!” “남새를 깨끗이 씻어 먹자!” 등의 사전 위생선전을 한다. 또 저녁식사는 죽(soup)으로 하고, 공복 상태에서 이튿날 새벽 일찍 기상해 위생초소에 집합할 것을 당부하며 회충구제를 준비한다. 담당 보건의료인(1인 담당 3~4개 인민반: 150명 정도, 1개 이상의 합숙업소)은 새벽 5시 담당 구역에 도착해 누락된 세대와 개인을 체크하고 빠짐없이 복용토록 한다. 

회충약은 소아(1~14세)는 정제로, 성인은 물약으로 공급했는데 아무런 감미제 없는 ‘쑥우림약’은 강한 쓴맛 때문에 반드시 감독을 해야 했다. 이러한 회충 구제사업은 매년 3~4월과 9~10월 2회에 걸쳐 시행되는 보건의료인들의 거사이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 제약공장들의 물, 전기, 에너지 사정으로 회충약 제조가 어려워 회충약 부족으로 산토닌(Santonin) 쑥이 건초 상태로 공급됐다. 보건일군들은 담당 구역 내에 나가 쑥을 우려서 공급해야 했다. 그 일의 어려움으로 인해 미공급 사태가 생겼고, 이후 3년여간 이런 건초 공급조차 없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98년 여름 느닷없는 유엔 약품 사찰단과 함께 유엔 약품이 도착했다. 메마른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공급된 약품 속 기생충약 메벤다졸(mebendazole)은 효과가 탁월했다. 이제 오청성 하사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졌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법학도로 공부하고 싶다는 희망의 다리는 탄탄하게 열려 있다. 부디 열심히 공부해 정의로운 법관이 되어 통일의 날 북한과의 사회통합과 통일국가 건설의 참된 일군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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