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현대정치는 정당정치다. 이 말은 정치의 중심이 곧 ‘정당’이라는 국민의 결사체에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제3공화국 헌법에서 정당제도가 보장된 이후 정당은 각종 공직선거에서 대통령 후보, 국회의원 후보와 지방선거 관련 후보자를 내고 유권자들의 표를 얻은 결과로 공직에 오르게 하고, 국정 전반이나 지방의 일에 정치적 의견을 내는 등으로 중앙정치나 지방정치를 정당이 주도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국민의 건전한 정치의사를 형성해야 할 정당의 사명이자 의무라 할 것인 바, 오늘날 정당이 정치의 주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그렇듯 정당이 국민의 삶과 연결된 정책을 적기에 잘 세우면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갈등을 해결해 국민이익과 국가발전에 보탬을 줘야 하건만 우리 정당사에서 명멸된 많은 정당들의 행태는 분명 그렇지가 않았다. 중요사안이 있을 때마다 정당과 정치인이 흔히 내세우는 주장, 즉 ‘국민을 위한다’는 것은 명분으로 끝났고, 이전투구(泥田鬪狗)에다가 당리당략을 일삼는 등으로 그들은 위민보다는 스스로의 입신양명에 바빴다. 그 폐단을 잘 알았던 국민이 나서서 ‘정치가 변해야 한다’고 주문하곤 했지만 정치의 변화 속도는 너무나 더디기만 했다.

정치가 국민수준만큼 발전된다고는 하나 이는 어림없는 이야기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1928~2016)는 그의 저서 ‘부의 미래’에서 조직이나 사회기구의 변화 속도를 상호 비교한 좋은 예가 있다. 토플러 교수는 ‘기업 시속 100마일, 시민단체 시속 90마일, 정부 관료조직 시속 25마일’에 비해 정치조직은 ‘시속 3마일’이라고 단언했으니, 정당이나 정치인의 변화 속도가 매우 더디다는 점을 잘 말해주고 있다. 변화가 빠른 현대사회의 진수(眞髓)를 읽어내 시대변화에 곧장 대처해야 할 정당과 정치인의 변화 속도가 오히려 떨어진다는 점을 설파했다.

그런 현상들이 국민으로부터 정치불신을 받게 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는 우리 정당사가 말해주듯이 정당이 안정화되지 못했다는 증거인데 지금도 원내정당들은 이념 내지 선호성을 토대로 통합을 꿈꾸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이고 제1당이라고는 하나,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국민의당과의 합당설이 수시로 나돈다. 또 자유한국당이 바른정당과 통합해 보수세력의 힘을 모아 현 진보정권에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말이 나온 상태에서, 중도를 표방하는 국민의당 역시 세를 불리기 위해 바른정당과의 정책 연대를 원하고 있으니 정국은 바야흐로 이합집산의 물결이 드센 격랑정치 판도의 현실을 맞고 있다.

통합을 바라는 각 정당들은 원내 의석을 불려 현 정국을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지만 내년 4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승리의 발판을 굳건히 다지자는 의도로도 엿보인다. 정당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당 구도의 셈법으로 분주한바, 한국당은 바른정당이 흡수되도록 바라고 있고, 바른정당 자강파들은 홀로서기로 중도 확산을 꾀하고 있다. 또 국민의당에서는 내년 지방선거가 민주당과 한국당 양강 구도로 고착되지 않도록 고차원적인 전략짜기에 고심 중이다. 이런 정치상황이니 여야를 막론하고 상대당에 대한 네거티브전략이 나오기도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은 이념과 국민 선호에 따라 당 정체성에 합당하다면 얼마든지 합당과 분당을 할 수 있는 일이고, 지금까지 그래왔다. 하지만 이번 정치권의 합당 또는 연대의 이합집산이 성사될 경우 크게 요동칠 정치 지형의 변화 조짐을 두고 여야를 막론하고 당 지도부 인사들이 바짝 긴장하는 상태다. 특히 지난 3일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당원1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 조치시키면서 보수통합을 위한 정계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자 난파선의 처지가 된 바른정당이 궁지에 몰린 가운데 각 당은 방해공작(?)을 서슴지 않고 있다. 자기 정당만 간수하면 될 일임에도 남의 당의 일에 관여해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며 셈법에 바쁘다.

얼마 전 국민의당에서 바른정당과의 통합 시너지가 정당지지도를 끌어올린다는 긍정적 조사 결과에 힘입어 통합을 원했지만 물 건너갔고, 이제는 정책 연대를 서두르고 있는데, 바른정당의 대표적인 자강파 유승민 의원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같이 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보수 또는 중도 색채를 업고 유리한 이합집산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다. 분명한 점은, 잘 짜진 정당구도는 정국을 안정화시키며 국가발전을 꾀하는 동력이다. 그렇다면 진행되고 있는 통합과 연대 논의는 정당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국민이익을 증대하기 위한 정당 상호간 윈윈(Win-Win)하는 이합집산이라야 한다. 그래서 공자말씀을 덧붙여본다.

하루는 자하가 공자에게 정사(政事)에 관해 물었는데 공자는 “無欲速(무욕속)하며 無見小利(무견소리)니 欲速則不達(욕속칙불달)하고, 見小利則大事不成(견소리칙대사불성)이니라” 대답해주었다. 풀이하면 “속히 하려고 하지 말고, 조그만 이익을 보지 말아야 한다. 속히 하려고 하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조그만 이익을 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인즉, 시의를 읽고 대의에 따르라는 것이니 정당들이 명심해볼 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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