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국제화 시대에서 다자국 간 무한경쟁은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그 중심에 외교가 자리 잡고 있는데 현대화사회에서 외교가 갖는 실익 확보가 국익이나 국민보호 면에서 매우 중차대하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대사직, 그중에서 4강 대사를 두고 말들이 많았는데 이 정부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임장을 수여한 한반도 주변 첫 4강 대사는 현장 외교가 부족한 인사라는 점에서 발탁 후부터 줄곧 야당의 비판을 받아왔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이나 전통적으로 유지돼온 한미동맹 관계로 볼 때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4강과의 관계를 중시해왔다. 그동안 역대정부에서는 주미·주일·주중·주러 대사를 비중 있게 다뤄왔으며 대개는 전문성을 가진 인사보다 권력 실세 등 정치인을 선호해 중책을 맡겨왔다. 그 이유는 4강 대사가 정권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상대국과의 외교관계에서 믿음을 줘 더 유리한 국면을 이끌고자 하는 고차적인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양국 간 복잡미묘한 현안이 개재돼 있는 경우, 외교 노하우가 많지 않은 비전문 인사들은 외교적 관례나 절차에 따르기보다는 정치적 색채를 강조하는 바람에 양국관계가 더 껄끄러운 국면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한마디로 정치 실세가 임명돼 소기의 성과가 있으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이렇다 할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사례를 현장에서 많이 보아왔던 전문 외교관 출신자들은 정권 실세가 대사에 임명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왔는데, 특히 주미·주일·주중·주러 대사 등 4강 대사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전문 외교관 출신인 반기문 전 유엔총장이 얼마 전 한국안보문제연구소가 주최한 비공개 강연에서 그와 같은 맥락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주변 4강 대사 인사에 대해 “외교관은 아무나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사”라며 쓴소리를 한 것이다. 비단 반 전 총장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초대 4강 대사로 조윤제 주미, 노영민 주중, 이수훈 주일, 우윤근 주러 대사가 선정되자 정치권에서 문제성 있는 인사라며 비난을 가했던 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박지원 전 대표가 우려를 표시했던 것이다.

사실 이 네 명의 대사들은 직업외교관이 아니다. 조 주미 대사는 경제학자이고, 노 주중 대사는 문 대통령의 선거 캠프에서 조직본부장을 지낸 3선 의원 출신이다. 이 주일 대사는 교수 출신으로 현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 외교·안보분과 위원장을 지냈으며, 우 주러 대사는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3선 의원 출신이다. 하나같이 현장 외교 경험이 부족한, 대선 캠프 출신이거나 정치인 출신이 기용됐으니 야당과 외교관 출신자들의 우려와 지적은 틀린 말이 아니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의 외교관 경험을 살려 4강 대사에 대해 일일이 언급했다. 외국에서 근무하는 우리나라 대사는 현지어와 영어에 능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지어를 알고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 주재국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서 사안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영어 능력도 안 되고 현지어를 모르는 대사는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경험칙을 토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혹자들은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서 외교부 개혁의 하나로 대사·총영사 등 재외공관장의 30%를 비외교관 출신으로 임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음에 대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반대 여론 형성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반 전 총장의 발언도 일리는 있다.

우리나라 외교 사안 가운데 4강 대사가 할 일들이 무척 많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각자 상대국과의 긴밀한 우호 증진은 물론 유엔 등과의 공동보조를 맞추는 일이 핵심이다. 그런 공통적인 외교적 노력 외에 미국과는 한미동맹과 관련된 제반 사항들, 앞으로 다뤄야 할 FTA 재협상 문제 등 과제가 산적돼 있고 특히 중국과의 외교는 주한미군 사드 배치에 따른 갈등이 심화된 최악인 상태에서 한중관계를 풀어나가는 것에 신중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중국과의 꼬인 외교적 실타래를 노 주중대사가 전적으로 처리할 사안은 아니라 하더라도 상대국에 주재하는 만큼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면서 새로운 한중관계의 교두보 역할을 잘해 나가야 한다.

대사는 외국 주재국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이다. 국가의사를 주재국에 전달하면서 현지 교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니고 있다. 행여 양국 간 정치적·경제적 문제나 갈등 발생을 예방하고 돈독한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수시로 주재국의 공식·비공식 입장을 우리 정부에 전달해, 정리된 대한민국의 의견을 상대국에 전달하면서 조정해야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정치력도 있어야 하겠지만 주재국에서 외교 채널을 공유하는 언어의 유창함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인 것이다. 그래서 반기문 전 총장의 ‘초대 4강 대사’에 대한 언어 능력 비판은 더 치열해가는 소리 없는 총성인 외교전쟁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현지 외교관들이 국익 우선의 바탕위에서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경험적 소신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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