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우리 사회에서 좋은 의미로 만들어진 어떤 제도나 아이디어 모으기가 시간이 흐르고 특정계층에 휘둘리다보면 당초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설령 본래의 취지는 맞다 하더라도 다수 참여자의 주장·주의가 어느 일방으로 흐르다보면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지난해 말 광화문광장에서 민주시민 의견 청취가 활발했던 촛불시위 때 경험을 살려 성숙된 민주주의를 이어가기 위해 만든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 제도가 그러한 사례 중 하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간접민주주의 제도에 따라 국민의 직접적인 의사 표시 기회가 적었던 만큼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청와대에서는 직접민주주의의 궤를 살려 국민 여러 계층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청원 게시판을 신설했다. 그 취지는 국민소통을 강화하기 위해서인데, 청원게시판에는 국민 의견들이 봇물처럼 쏟아졌고 국민청원 상위를 차지한 사안들이 사회 주목을 받으면서 활성화돼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황당 민원이나 의견도 상당수여서 청와대조차 이 청원 창구가 국민 참여 통로인지, 떼법 창구인지 분간이 어렵다는 말을 했다.

시행 초기에는 ‘직접민주주의 실험’인 듯 국민이 궁금해 하거나 물음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답변하는 등으로 그리스 아폴로 광장에서 시현됐던 민주주의의 부활처럼 신선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게시판 위상에 차질을 빚게 됐다. 현재 청원진행중인 내용에서 민주정당인 ‘자유한국당 위헌정당 해산 심판 청구 요청’ 건에 3만명이 청구하는가 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 출국금지’ 청원수가 9만 6천명을 넘고 있는바, 이같이 특정 이념을 가진 청원 내지 지지층들의 정치 놀이터로 변질돼 점차 정치도구화 되어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수 의견이라고 하여 억지 쓰거나 법의 지배를 벗어나는 탈법 제의는 사회 공정성에 반하는 것이다. 이왕이면 우리 사회에서 고질화돼 있는 폐해나 부작용 가운데 개선이 가능한 사안이나, 또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애국활동 하다가 순국한 사람들을 칭송하는 등 건전한 국민의식이 전제됐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다. 따지고 본다면 애국지사나 선열, 국군장병들의 값진 희생 덕분으로 오늘날 우리가 이 땅에서 편안히 살고 있지 않는가. 지금과 같은 난국(亂局)일수록 조국을 생각하며 번영·발전을 위해 나라 사랑하는 작은 등불이라도 밝혀야 할 시기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얼마 전 뉴스에서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했던 독립군들의 후손들이 한국에 영주 귀국해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육군 모 사단에서 6.25전쟁 실종 군인에 대한 유해 찾기 사업을 펼쳐 희생자들의 일부 유해를 찾았다는 보도를 접하고서다. 또  전투중인 국군장병을 위해 탄환을 지게에 지고 옮기다가 희생당한 일명 ‘지게부대’ 대원들의 유해를 찾았다는 기사가 나왔는바, 나라를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던 분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충정을 기리는 행사나 지원은 국가차원에서 지원되고 그 후손들에게 보답해야 한다.

지난 우리 역사를 들춰보면,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나 국민주권을 빼앗긴 때 등 혼란기에 애국자들의 구국활동은 청사에 길이 빛나고 있다. 이는 동서고금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는  사실로 설령 남의 나라 이야기라 해도 그 애국충정에 숙연해진다. 나는 얼마 전 중국 드라마 채널, 아시아앤에서 방영한 ‘마작(麻雀)’을 보았다. 줄거리는 1940년대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된 애국조직의 일원으로서 모습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비록 드라마라 할지라도 ‘조국’이 무엇인가를 일깨워 준, 가치가 있고 의미심장한 드라마였다.

코드 네임이 ‘마작(Sparrow)’인 주인공 천션(陳深)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본 앞잡이로 위장 침투한다. 친일 왕위정부와 손잡은 일본군부는 항일열사를 잡아 죽이기 위해 특별행동처를 만들었고, 필충량 처장 곁에서 정체를 숨기고 파고든 공산당원 천션이 수사팀장을 맡으면서 쫓고 쫓기는 첩보전이 진행된다. 비밀조직원으로서 애국활동 하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희생은 물론 가족이 희생당하는 처절한 현실에서도 개인보다는 ‘나라가 먼저’라는 신념을 행동으로 옮겼는바, 일본에 짓밟힌 조국을 되찾기 위해 죽음도 마다않고 오직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드라마 속 영상들이 아직도 나의 뇌리에서 강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일본군에 의해 점령당한 1940년대 상하이를 무대로 공산당원의 애국활동을 그린 첩보물이 테마상 자칫 식상할 수 있겠으나 전혀 그런 감이 들지 않는다. 드라마 전체를 싸고도는 명제는 ‘애국’이라는 절체절명의 가치였고, 내용의 주 이슈가 된 ‘유조국여신앙 불가고부(唯祖??信仰 不可辜負)’ 즉, ‘오직 조국과 신앙은 저버릴 수 없다’는 뜻에 쉽게 공감이 갔다. 나라사랑 정신이 물씬 풍겨나는 훌륭한 드라마 ‘마작’을 보고나서 조국을 위해 희생한 조직원들의 애국활동을 되새겨본다. 우리에게서 조국은 무엇이며, 애국은 또 어떤 행동으로 나타나는지를….

과거청산으로 치달아 실타래처럼 꼬인 오늘의 난국에서도 조국의 하늘은 높푸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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