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며칠 전에 선배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잠시 나눴다. 한 달 가까이 만나지 못했으니 요즘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자주 나오는가 싶어 주 이슈(issue)를 물어봤더니 여전히 정치와 경제 문제였고, 너무 오랫동안 나라 안이 시끄럽다는 것이다. 정치는 여야가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는 자기들 입장에만 빠져 평행선을 달리는 등 그 모양이니 그렇다 치고, 출산율이 낮은데다가 실업률이 넘쳐나고 노인들이 노후생활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갈수록 우리 경제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어둠의 장막을 걷지 못하고 있는 게 1997년 발생했던 IMF 외환 위기의 영향이라고 말했다.

20년이 지난 외환 위기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영향을 준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싶어 다시 물었더니 그 당시 기업이 도산되고 고통을 맞았던 많은 직장인들로 인해 우리 사회에 안정된 직업에 대한 기대치가 한꺼번에 들여 닥쳤다는 것이다. 한창 일할 나이인 50대에 직장을 잃고 자영업 등에 내몰려 전전했던 사람들에게는 비록 박봉이라 하더라도 정년까지 직장이 보장되는 직업이 뼈에 사무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뭐니 뭐니 해도 공무원이 가장 안정된 직장이라며 친지나 자식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무엇보다 안정성에 치중해야 한다는 조언을 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의 열풍이 불어 닥쳤다는 나름대로 논리였다.  

이야기를 듣고 그 과정과 현실을 새겨보니 이해가 간다. 경제사정은 IMF 외환위기 때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좋아졌다고는 하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더 커지고 고용 불안이 심화되는 등 부작용을 가져다주었다. 그 여파로 실업률이 높아지는 속에서 특히 청년실업률이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8.6%로 고공행진하다 보니 청년들이 새로운 기술 분야나 전공한 창업에 나서기보다는 안전한 직장 찾기에 여념이 없다. 그래서 서울 노량진과 강남뿐만 아니라 지방의 공무원학원에도 공시생들의 발걸음이 넘쳐날 지경인데, 취업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현재 공시생은 28만 1천명으로 미취업자의 21.2%를 차지하고 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대졸 이상 미취업자 10명 가운데 7명이 공시생들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직업의 안전지대로 여겨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으니 해마다 수험생들이 늘어나 경쟁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올해 국가직 9급공무원 경쟁률이 약 46.5대 1이었고, 서울시 7급·9급은 평균 86.2대 1을 보였다. 하반기에 1000명 정도 증원된 경찰 순경시험은 전반기 1차 때(40.9대 1)보다 다소 낮은 26.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요즘은 고시공부 하던 공시생들이 7급, 9급, 순경시험으로 낮춰 지망하고 있는 추세로 공채시험에 합격하기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어려운 일들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경제문제 중에서 실업률 해소가 우선과제이다. 특히 청년들에게 미래가 보장되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청년 창업 등 젊은이들이 하고 싶은 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방향으로 일자리 정책을 펼쳐나가야 하건만 기업은 적극적인 투자를 하지 않고 정부는 공무원 증원에 몰두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국가예산을 확보해 공무원 수를 증원해 일정 인원들에게 안정된 직업을 보장한다는 것인데,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 전체 공무원 현원은 104만 6487명으로 작은 숫자가 아니다. 소방, 경찰 등 일부 현장 분야에서 인원이 부족한 것은 맞지만 기술발전으로 줄일 수 있는 분야의 인력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그런 와중에 문재인 정부에서는 향후 5년간 공무원 총 17만 4000명을 증원하기로 하고 내년에 중앙공무원 1만 2200명을 신규 채용할 계획이다. 공무원을 대폭 늘려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마중물을 내보내겠다는 청년 일자리정책은 새 정부의 핵심공약이니만큼 실행해야 할 필요성은 있겠지만 공직사회의 전반적인 구조 조정이 선행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나라인구가 줄어들고 신생아 출생이 40만명선이 무너지는 현실에서 매년 퇴직인원을 보충하는 선에서 증원은 어쩔 수 없다고 하겠으나 해마다 평균 3만 4천여명씩 늘리는 공무원 증원은 능사가 아니다. 이 정부가 추진하려는 향후 5년간 공무원 총 17만 4000명 증원 계획에 따른 국회 예산정책처의 추계를 보면 난맥상을 알 수 있다. 공무원 1인당 지급해야 할 연금이 94조에 달하고, 인건비까지 합친다면 새로 늘어나는 재정부담액은 374조 1000억원에 해당한다.  

공무원 증원은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 제공에 효과가 크므로 그 방법은 행정구역 개편과 계층구조 축소 등 인력 재배분에 의한 증원이 바람직하다. 임시로 ‘빼먹은 곶감’ 격인 공무원 증원은 현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 많은 부담을 주는 일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손쉽고 편한 방법이라고 하여 섣불리 공무원 증원을 실행했다가는 그들이 재직하는 기간은 물론 은퇴 후 25년간 연금에 지출되는 국민혈세를 어찌 감당해낼 것인지도 한번 짚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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