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4일(현지시각)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신전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화가 채화되고 있다. (출처: 뉴시스)

고대 종교의식으로부터 시작
제우스에게 바치는 제전경기
제빵사 코로에부스, 첫 우승자
‘이교도 종교행사’ 규정, 폐지

1500년 후 부활한 근대올림픽
1908년 첫 동계종목 추가돼
韓, 일제 해방 후 첫 공식 출전
올림픽성화, 30년만에 평창으로

[천지일보=이솜 기자] ‘인간의 완성과 세계의 평화’.

근대올림픽을 탄생시킨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선언한 올림픽의 정신이다.

제23회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일이 코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대한민국 강원도 땅에서 열리는 만큼 올림픽의 ‘진짜’ 정신을 찾는 목소리가 많다.

올림픽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또 동계 종목은 언제 등장했을까. 한국의 동계올림픽의 역사와 정신은 무엇일까. 알고보면 더 재미있는 ‘올림픽 이야기’를 소개한다.

◆고대 올림픽… 종교 의식으로부터 시작

올림픽이 처음 개최된 것은 1896년 그리스 아테네지만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BC) 776년 그리스 도시국가 앨리스 출신의 코로 에부스가 스타디온 달리기에서 우승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이때를 올림피아의 첫 경기로 유추하고 있다.

시작한 계기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다. 이 중 가장 탄력을 받는 이야기는 ‘종교의식’으로부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올림픽 2780년의 역사(주디스 스와들링)’에 따르면 고대 올림픽은 원래 제우스신을 찬미하기 위한 제전경기였다. 제전 배경으로는 엘리스에 역병이 만연하자 국왕 이피토스가 ‘전쟁을 멈추고 제우스에게 바치는 제전을 열라’는 델포이의 신탁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결국 튼튼한 신체의 인간을 골라 신에게 상징적으로 바치는 일종의 제사의식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수년간 이어진 전쟁상태로 지친 그리스 국가들에게 올림픽은 ‘휴전’의 목적도 있었다. 엘리스·스파르타·피사 등 3개국은 휴전 협약을 맺고 올림피아 지역을 중립 및 불가침 지역으로 규정했다. 올림픽 기간 적대행위 중지를 선포했으며 사형을 중지하고 사면도 시행했다.

첫 경기는 200야드(192m) 달리기 한 종목만 열렸다. 제빵사였던 코로 에부스는 우승 상품으로 올리브관을 수여 받고 자신의 석상을 제우스 신전에 남길 수 있게 됐다.

이후 경기종목은 5종경기(멀리뛰기, 창던지기, 단거리경주, 원반던지기, 레슬링)로 늘어났다. 여기에 다시 전차경기와 판크라티온, 권투 등이 추가됐다.

경기 참가자격은 매우 까다로웠다. 일단 그리스와 그리스 부속국가 시민권이 있어야 했고, 범법행위나 제우스 신에 대한 불경을 저지른 적도 없어야 했다. 전라로 경기를 했고 여자는 관람이 금지됐다.

여러 신을 섬기던 각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올림픽 대회가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면 올림피아로 몰려들어 신전에 참배하며 제례를 지냈다. 신의 도움을 얻은 자만이 올림픽에서 우승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경기에 앞서 선수들이 규칙을 지키겠다는 서약과 함께 신의 은총을 비는 공양을 제우스에게 올린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반칙한 선수는 신을 기만한 죄로 사형에 처하기까지 했다.

1200여년 동안 지속되던 고대 올림픽은 393년 지중해 연안을 장악한 로마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올림픽은 올림피아 신들을 위한 잔치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올림픽 제전을 이교도들의 종교행사로 규정해 394년에는 폐지를 명령했다.

▲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린 첫 동계올림픽의 스키점프 경기(왼쪽). 한국이 첫 공식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1948년 생모리츠올림픽의 봅슬레이 경기 모습. (출처: IOC 홈페이지 캡처)

◆1500년만에 부활… ‘세계평화’ 이상

그후 약 1500년 동안 중단됐던 고대올림픽 경기는 프랑스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의 노력으로 1896년 부활했다.

당시 그의 목적은 ‘프로이센프 전쟁’에서 패해 사기가 저하된 프랑스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의욕을 북돋아주고, 세계평화를 이룩하려는 데 있었다.

“인간의 성공을 결정짓는 척도는 그 사람이 승리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느 정도 노력하였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승리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히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올림픽 운동은 세계에 하나의 이상을 심어주는 일이며, 그 이상은 바로 현실생활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육체의 기쁨, 미와 교양, 가정과 사회에 봉사하기 위한 근로, 이상 3가지다”라는 그의 명언도 이 같은 올림픽 정신의 연장선에서 나왔다.

근대 최초의 올림픽은 고대 발상지인 아테네에서 열렸다. 우승자는 개막식날 열린 삼단뛰기에서 우승한 미국 선수 제임스 코널리였다. 하버드대 신입생이었던 그는 무단결석을 한 채 자비로 화물선을 타고 출전해 육상 세단뛰기에서 13m 71의 기록으로 우승을 거머줘 눈길을 끌었다.

근대에는 어느때보다 올림픽의 정신이 강조됐으나 평화는 커녕 고대 올림픽처럼 휴전 조차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동안 제1·2차 세계대전으로 3번이나 중단됐고, 정치적인 문제가 개입돼 테러가 일어나는가 하면 대회를 보이콧하는 사례까지 있었다. 1980년 모스크바 대회에서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비난하며 60여개국이 참가를 거부했으며, 그 다음 올림픽인 LA 대회에서도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보이콧 결정이 있었다.

올림픽 재건 이후 냉전이 종식될 때까지 전쟁으로 개최가 취소되거나 국가들의 불참으로 반쪽 올림픽으로 남은 것이다.

탈냉전시대부터는 유엔 총회가 올림픽 휴전에 관한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등 올림픽 휴전이 다시 이뤄지고 있다.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첫 동계올림픽

그렇다면 올림픽과 동계종목이 만난 것은 언제부터일까.

근대 올림픽 이후에도 겨울 스포츠가 올림픽 종목이 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날씨 때문에 하계스포츠와 함께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 1992년 알베르빌올림픽 당시 김기훈 선수가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이 첫 메달을 획득했다. 사진은 아이스하키 경기 모습(왼쪽). 2010년 벤쿠버올림픽에서 김연아, 이정수,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 등 선수들의 활약으로 한국이 종합 5위를 기록해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당시 쇼트트랙 경기. (출처: IOC 홈페이지 캡처)

동계스포츠가 올림픽에 포함될 수 있었던 것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창립위원인 스웨덴 출신 빅토르 구스타프 발크의 공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쿠베르탱의 친구였던 발크는 꾸준히 동계스포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여러 차례 시도 끝에 1908년 런던올림픽에 피겨스케이팅을 정식종목으로 추가했다.

동계올림픽은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처음 열렸다. 그해 7월 파리올림픽에 앞서 ‘국제 동계스포츠 주간’이란 명칭으로 대회를 연 것이 시초였다. 그 후 1926년 제26차 IOC 리스본 총회에서 동계올림픽을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분리 독립한 동계올림픽의 첫 메달리스트는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우승을 차지한 미국의 찰스 주트로다.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대회까지 하계올림픽과 같은 해에 열리다가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대회부터 2년 주기로 동계·하계올림픽이 번갈아 열리고 있다.

1988년 캐나다 캘거리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고 7개월 후 서울올림픽 사이클에서 은메달을 가져오면서 같은 해에 동·하계 메달을 모두 거머쥔 동독의 크리스타 로텐부르거와 같은 선수는 다시 볼 수 없는 것이다.

첫 대회 피겨스케이팅과 아이스하키, 스피드스케이팅, 스키점프 등 16개였던 종목은 이번 평창올림픽에서는 102개까지 늘었다.

개최국은 미국이 네 번으로 그 횟수가 가장 많고, 프랑스는 세 번, 이탈리아, 일본,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등은 두 번씩 개최했다. 노르웨이가 총 118개로 금메달을 가장 많이 땄다. 이어 미국(96개), 독일(78개) 순으로 뒤를 잇고 있다. 한국은 15위로, 총 26개의 금메달을 가져왔다.

韓, 일장기 출전의 ‘설움’… 1992년 첫 메달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브리핑에 따르면 한국에서 근대적 의미의 동계스포츠는 1904년 함경도에서 핀란드 상인들이 스키를 타며 전파됐다. 우리나라가 동계올림픽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36년부터지만, 우리 민족과 동계스포츠의 인연은 훨씬 깊다는 설명이다.

당시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대회 때는 일제강점기로, 선수 3명이 일장기를 달고 출전해야 했다. 해방 후 1947년 IOC에 가입, 선수 3명이 출전한 1948년 생모리츠올림픽이 한국의 첫 공식적 동계올림픽 출전이다. 이후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노르웨이 오슬로 대회에는 불참했고, 1956년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올림픽부터는 꾸준히 선수단을 파견, 이번 평창올림픽까지 18번째 참가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에서는 역사적인 한국의 첫 동계올림픽 메달이 나왔다.

▲ 피겨여왕 김연아가 지난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열연하고 있다. 김연아는 150.06점을 획득, 총점 228.56점으로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금메달을 따냈다. (출처: 뉴시스)

이 대회에서 금 2, 은 1, 동 1로 10위에 오른 이후로 한국은 계속 메달을 획득했으며 2010년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금 6, 은 6, 동 2로 종합 5위를 기록해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2014년 러시아 소치올림픽에서는 금 3, 은 3, 동 2를 획득해 13위를 차지했다.

평창올림픽의 시작을 알리는 성화가 1일 88서울올림픽 후 30년 만에 한국에 도착한다. 전 세계의 이목이 한국에 집중되는만큼 ‘인간의 완성과 세계의 평화’라는 올림픽 정신을 다시 발현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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