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흥미로운 설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주인공인 신라 제48대 경문왕. 왕위에 오르기 전 전왕인 헌안왕이 중매를 섰다. 왕이 화랑인 응렴(경문왕의 이름)을 눈여겨보며 자신의 딸을 짝지어 주기로 한 것이다.

헌안왕은 딸이 둘 있었다. 그런데 큰딸은 얼굴이 좀 모자란 반면 작은 딸은 절세의 미인이었다. 응렴은 언니보다는 동생과 혼인을 하고 싶었다. 선택 과정에서 응렴은 흥륜사 스님한테 찾아갔다. 그랬더니 스님은 큰딸을 취하면 세 가지 기쁨이 있을 것이라고 암시했다.

응렴은 큰딸을 취했으며 헌왕이 죽자 왕위를 승계하는 영예를 차지했다. 그리고는 왕명으로 작은 딸까지 왕비로 맞이하게 된다. 스님이 큰딸을 취하면 세 가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점괘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중매가 아니고 남녀가 눈이 맞아 혼인을 하는 것은 야합(野合)이라고 했다. 신라 청년장군 김서현은 중매를 거처지 않고 왕녀 만명(萬明)과 야합해 지금의 진천 땅인 만노군으로 도망쳤다. 만명은 나중에 삼국을 통일한 명장군 김유신을 낳았다. 신라에 귀화한 가야 귀족 강수(强首)도 천민인 대장간 딸과 야합해 백년해로를 했다.

조선 유교사회 양반가에서는 대부분 중매를 통해 혼인을 했다. 이순신 장군은 당대 영의정을 지낸 이준경 대감이 장군이 15세에 친구들에게 공부를 시키는 것을 목격하고 가장 신임하는 부하 방진의 딸을 출가토록 했다.

백사 이항복은 일찍이 부모를 잃고 누님 댁에서 공부를 했으나 당대 명문세력인 권철(權轍,영의정)이 어린 시절부터 손녀사위감으로 점찍어 놓았다가 혼사를 시켰다. 백사의 장인은 행주싸움의 영웅 도원수 권율 장군이다.

비운의 문학소녀 허난설헌은 그 오빠 허봉이 중매를 섰다. 그러나 허난설헌은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으며 신랑 김성립은 매일 밤 기생방을 전전해 신부를 울렸다. 중매를 선 허봉은 자신이 잘못 판단해 시집보낸 죄책감으로 번민했다고 한다.

선조 때 명나라에서 귀화한 장군 두사충(杜師忠)은 장성한 아들이 중매를 섰다. 아버지가 매일 외롭게 보내자 이같이 결정한 것이다. 두사충은 명나라가 망할 것을 미리 예견해 대구에 내려가 명당을 잡은 후에 젊은 부인과 신접살림을 차린다.

사대부가나 부잣집은 사주단자가 넘쳐나나 가난한 총각 집에는 중신애비가 얼씬도 안했다. ‘중신 타령’은 공주에서 채집된 각설이 한탄가로 가난한 총각의 비애를 노래한 것이다.
- (전략)… 둘 온다. 둘 온다. 중신 애비가 둘 온다/ 아랫말 윗말 시렁이골 논두렁을 빙빙 돌아/ 사주(四柱) 단자(單子) 서너개 들고 중신애비가 날아든다/ 화살처럼 빠른 세월 유수같이 흐르는디 기쁜 일이 무에 있나…’-

고전 심청가에 나오는 심봉사 마누라 뺑덕어멈은 본래 중매쟁이다. 심봉사를 중매 선다고 나섰다 목소리가 너무 예쁘다는 말에 그만 안방을 차지했다.

그런데 뺑덕어멈은 성질이 곱지 않았다. 판소리 심청가는 그녀의 심술과 행패를 재미있게 그린다. ‘밥 잘 먹고, 술 잘 먹고, 고기 잘 먹고, 떡 잘 먹고, 양식 주고 술 사먹고, 쌀 퍼주고 고기 사먹고. 통인잡고 패악 허고, 정자 밑에 낮잠 자고, 한밤중 울음 울고, 오고가는 행인들께 담배 달라 실랑하기… 해담을 잘 허기와 신부신랑 잠자는디 가만 가만 문 앞에 들어서서 불이야!…(하략)’

더 패악한 것은 정든 고향 도화동을 떠나 한양 맹인잔치에 가면서 황봉사와 눈이 맞아 심봉사 노자를 훔쳐 도망 간 것이었다.

최근 사기 중매의 덫에 걸려 재산을 탕진하는 노총각들이 많다. 피해자들은 중매업체가 현지 여성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해 결혼시킨 뒤 한국 남성의 요구로 파혼한 것처럼 교묘하게 서류를 꾸며 위약금 소송을 제기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판 뺑덕어멈의 패악이다.

사기를 당한 가정은 풍비박산되고 노모들은 매일 눈물로 지낸다고 한다. 사기 중매 행위를 근절시킬 방안은 없는 것인가.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