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한·중·일을 비롯한 아시아 5개국 순방에 나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월 3일 워싱턴을 출발한다. 바로 이날이지만 그가 처음 들르는 곳은 하와이 미 태평양사령부다. 이곳은 대북(對北) 군사 옵션을 책임지고 관장하는 곳이다. 그만큼 이곳 방문은 상징적이며 의미심장하다. 북핵 문제는 트럼프의 가장 큰 현안이며 세계가 당면한 최대 골칫거리다. 트럼프가 첫 방문지로 하와이 미 태평양사령부를 선택한 것이 시사거니와 그의 아시아순방 일정 전체가 온통 수미일관(首尾一貫) 대북 압박 외교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짜여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은 북의 김정은에게는 여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북핵 문제에 관한한 밑도 끝도 없이 악착같고 집요하다. 미국은 북의 핵 협상 전술에 25년을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았다. 특히 트럼프의 전임 오바마 대통령은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북의 핵개발을 사실상 방치했으며 시간을 벌어주었다. 오바마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이래서 그건 어쩌면 평화상 수상과 전혀 무관해 보이지 않는 일종의 사보타지(sabotage)와도 같았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시절인 1994년엔 그의 결단으로 무력응징이 가해지려는 순간에 평화전도사를 자임한 그 전임자 카터가 ‘손사래’를 치며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대동강에서 김일성 부부가 베푼 뱃놀이를 즐겨가며 위기를 가라앉혔다. 그 덕분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김일성과 북은 구사일생으로 되살아날 수 있었다. 

한편으론 바로 그 카터 때문에 어떻게든 벌써 결말이 났을 뻔한 북핵 문제는 미국이 조롱당해가며 현재에 이르러 더 위험하고 골치 아픈 국제적 초특급 ‘미제(未濟)’가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북핵 문제에 집요한 트럼프의 등장으로 북은 다시 위기에 처했다. 그의 등장으로 ‘종이호랑이’ 미국을 맘껏 속여먹고 골려먹던 좋은 시절은 간 느낌이다. 항모와 핵 잠함, B1B 폭격기 등 미국의 전략자산은 언제든 북을 타격할 준비를 갖춘 상태로 한반도 주변에 항시 대기 중이다. 국제적으로는 북과의 외교관계의 단절이나 축소 또는 외교관 추방 등의 북의 고립을 가속화하는 연쇄적 사변들이 도미노(domino) 현상처럼 일고 있다. 

거기에 트럼프는 외교와 군사 옵션의 두 카드를 양손에 들고 흔들며 김정은과 북의 정신을 빼놓고 있다. 급기야 ‘북이 알면 충격을 받을 것이 틀림없는 군사 옵션을 준비해 놓았다’고까지 함으로써 트럼프는 말(verbal) 전쟁을 절정으로 끌어 올렸다. 언필칭(言必稱) 북의 혈맹인 중국도 북의 편에서 점차 북을 압박하는 유엔의 편으로 발을 옮겨놓는 중이다. 러시아도 유엔의 대북 제재 규정을 충실히 지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정학적으로 멀리 있기에 한반도의 핵문제는 먼 산의 불쯤으로 여길 줄 알았던 EU까지도 북을 강하게 압박하고 나선 마당이다. 이 정도면 북은 사면초가에 몰렸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깡다구가 좋아도 내심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때 카터가 다시 ‘현재의 사태가 두렵다’며 김정은이 들으면 반색하지 않을 수 없는 북의 ‘구원 투수’를 자청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트럼프가 손사래를 쳐 훼방꾼이 될지 해결사가 될지 모를 그를 일단은 주저 앉혔다.

어떻든 트럼프의 미 태평양사령부 다음 방문지는 일본이다. 그는 5일 일본에 도착해 2박 3일 머문다. 7일 한국에 와서는 1박 2일, 8일 중국에 가서는 역시 일본에서와 같이 2박 3일 머문다. 그가 방문국마다 ‘밤을 고루 나눌 방법이 없다’며 한·중·일 3국 중에서 유독 한국에서만 1박에 그치기로 했다. 하필 왜 북핵 문제가 가장 엄중한 시기인데 한국에 와서 하루저녁밖에 묵지 않는가. 역지사지(易地思之)한다면 혈맹인 우리에게 어찌 섭섭하고 아쉬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렇게 일정이 바쁘다면 일본에서 아베 수상과 골프를 치기로 한 것은 어찌 된 일인가. 한국에서 하루저녁 묵는 걸 생략해도 아베와 골프는 쳐야겠다는 것 아닌가. 일이 이렇게 된 것을 뭐 배가 아프다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하여튼 뭐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미국 측은 말하기를 한국에서는 1박뿐이지만 한국 국회에서 연설을 하기로 한 것은 그 짧은 방문의 섭섭함을 보상하고도 남을 특별한 일정인 것처럼 생색을 낸다. ‘한국 방문은 아주 독특하고 특별한 방문이다. 국빈 방문으로 국회연설이 예정돼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까지 생색을 낼 일인가는 몰라도 국회연설은 한국에서만 행해지는 일정인 것만은 틀림없다. 

좀 빈정거리자면 기왕에 치는 골프, 트럼프와 아베는 골프 회동을 자신들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자국의 외교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것으로 만들려 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세계 랭킹 4위로서 올해에만 벌써 미국 프로골프투어에서 2승, 모두 5번의 우승 기록을 가진 일본의 골프 우상인 프로골퍼 마쓰야마 히데키(25)를 초청해 함께 라운딩을 하기로 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아베와 트럼프의 골프 회동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들은 이미 아베가 지난 2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트럼프 개인 소유 골프장에서 1합을 겨루었다. 겨루었다기보다 즐겁게 놀고 친선을 다졌다. 개인의 친선만이 아니고 이런 식으로 두 나라 관계도 끈끈히 했다. 그런데 트럼프와 아베의 골프 놀이는 급한 일일 것도 없을 것이지만 무엇이 급한지 트럼프가 일본에 도착하는 날 바로 벌어진다. 한국에는 ‘밤을 고루 나눌 방법이 없다’며 섭섭하게 해놓고 정작 한국에 베풀어야 할 그 시간을 일본에서 골프로 보낸다고 봐도 틀리지 않다. 한마디로 우리는 트럼프를 일본 골프장에 빼앗겼다. 아쉬운 일이다. 반대로 트럼프를 골프장으로 꾀어낸 일본은 외교적 쾌승을 거두었다. 트럼프의 밤(night)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한·중·일 3국이 물밑에서 얼마나 치열한 외교 신경전을 벌였는가. 한국 국회에서의 연설이 아무리 트럼프 일정의 백미(白眉)라고는 해도 그 신경전에서 우리는 루저(loser)다. 그렇지만 진짜 값진 승리는 이 같은 의전적인 이벤트에서의 숭리가 아니다. 그럼 뭔가. 바로 트럼프가 벌이는 대북 압박 외교에 우리가 혈맹으로서 일체감으로 동참,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의 염려를 날려버리고 실질적 성과를 도출해내게 하는 것, 그것이 진짜 값진 승리다. 그런 승리를 일구어낸다면 1박 2일이 비록 짧을지언정 아쉬울 것도 짧다고 할 것도 없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