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THAAD)의 배치를 둘러싸고 촉발됐던 한중 관계의 결빙(結氷)이 풀렸다. 양국은 그 같은 사실을 지난달 31일 공식 발표했다. 이렇게 해서 중국의 터무니없는 ‘사드 몽니’는 끝났다. 공식 발표가 있기 전에도 물밑 대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조짐들은 여러 방면에서 관측됐었다. 사실 중국의 ‘사드(THAAD) 보복’은 중국의 일방적인 몽니였으며 양국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사드 보복’은 우리에게 적잖은 실리적 피해를 안겼다. 그렇다고 중국이 그만큼의 반대급부를 챙겨간 것도 없다. 오히려 실(實)과 명(名) 모두를 잃은 쪽은 중국이다. 이성(理性)을 가진 세계 어느 나라가 보아도 우리는 실리적 피해자일지는 몰라도 중국은 강대국으로서 실과 명 모두를 잃었다. 

그렇다고 본다면 양국 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우리가 여러 경로를 동원해 열리지 않는 문을 열심히 두드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드의 결빙과 덫(trap)에서 벗어나려고 내심 더 초조했을 것은 우리보다는 중국이다. 초장에 그들은 사드가 그들의 핵심이익을 해치느니 뭐니 하면서 유연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격렬한 수사(修辭)들을 동원해 우리를 무참히 공격해왔다. 마치 우리를 무릎 꿇리고야 말겠다는 식의 잽과 스트레이트이며 훅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정신없이 쏟아지던 펀치 세례가 어느 순간 조용해지기 시작하더니 공식 외교 무대에서 눈길이 싸늘하거나 우리의 눈길을 애써 피해가던 중국 정부 대표들의 극히 비외교적인 표정도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비유컨대 이는 우리가 충분히 그 의미를 눈치 채고도 남을 만한 제스처, 바로 결빙이 풀리는 봄날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훈풍(薰風)의 신호들이었다. 이래서 사드 보복이 바야흐로 해빙(解氷)된 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주도한 성과라기보다 ‘갈증’을 못 참은 중국이 먼저 우물을 파기 시작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될 성 부르다. 그들은 그들이 움직일 이유가 없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기실 사드 보복으로 한국과 교류가 끊긴 중국도 내색을 안 해 그렇지 피해가 컸다. 뿐만 아니라 사리(事理)에 맞지 않게 이웃나라의 안보주권에 몽니를 부려 괴롭히는 행태를 보임으로써 세계로부터 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자신들의 체면을 심하게 깎아먹었다. 중국이 이를 깨닫는 순간 우리의 설득에 꼬리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여기에 트럼프가 곧 중국을 방문한다. 그는 중국에서 사드 보복의 부당성에 관해 시진핑(習近平)에 항변할 것으로 알려졌었다. 사드 몽니는 명약관화하게 부당한 횡포다. 그 부당성을 지적당하면 무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트럼프의 방문에 대비해 그 같이 껄끄러운 의제 하나를 중국이 서둘러 제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잖아도 힘이 센 미국 앞에 서면 작아지곤 하던 중국이다. 

원래가 ‘사드 보복’은 중국의 방향착오였다. 사드는 북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기 위한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주권국가의 당연한 방어적 안보주권 행사였다. 중국이 한국의 사드 배치에 시비를 걸려거든 적어도 먼저 북한의 비핵화를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우리와 한미 동맹의 어떠한 안보주권 행사에도 시비를 걸 근거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중국이 이런 사리를 벗어나 우리의 주권에 공격적인 간섭을 계속해온다면 우리는 그들이 두려워하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가속화해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작은 나라지만 중국이 그렇게 만만하게 볼 나라가 아니다. 사실 우리는 중국이 ‘사드 몽니’를 부리는 동안 끝까지 감정적인 앙갚음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이에 쫄지 않고 의연하고 냉정하게 잘 버티어왔다고 자평(自評)할 수 있다. 한중 관계가 어느 날 갑자기 ‘사드 보복’의 교착 상태를 벗어나게 된 것은 한국 측이 발휘해온 이 같은 인내와 냉철함에 바탕을 둔 집요한 교섭이 주효(奏效)한 것이며 그 덕분이고 결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같은 우리의 자세가 울고 싶은 중국의 뺨을 때려 문제를 만든 쪽에서 문제를 풀게 하는 결자해지(結者解之)적 이니쉬어티브(initiative)를 그들이 취하도록 만든 것이기도 하다.

한중관계의 해빙은 물밑협상을 통해 고도로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이루어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회국정감사에서 한 여당의원의 사드 갈등과 관련한 질의에 ‘양국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서 조만간 관련 소식을 발표할 수 있지 않나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이 정도면 양국 사이에 요로(要路)가 총동원되어 마무리한 물밑 협상을 공개해도 좋을 만한 때가 되어 공개한 것이나 다름없다. 여당 의원은 또 이렇게도 물었다. 중국에 보내는 한국 정부의 분명한 메시지가 나오도록 준비된 맞춤 질의였다. ‘한중이 건실한 전면적 협력관계로 가기 위해 3가지 장애물에 대한 분명한 한국 정부의 입장이 필요하다. 그것은 사드를 추가 도입할 것인가,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MD)에 참여할 것인가, 한미일 3각 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 하는 것 등이다. 답변은 미리 만들어진 모범답안에 따라 이루어지기를 ‘사드의 추가배치는 검토하고 있지 않고 MD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기존입장에 변함이 없으며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였다. 

이 같은 강 장관의 국회답변은 즉각 중국 관영언론사 기자의 맞춤 질문을 통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답변으로 되뇌어져 물밑협상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되고 수면위로 올라와 현실화됐다. ‘우리는 한국 측의 이러한 3가지 입장을 중시한다. 우리는 미군의 한국 사드배치를 일관되게 반대한다. 한국 측이 이 3가지 입장을 실제 행동으로 옮겨 유관 문제를 적절히 처리해 한중 관계를 안정되고도 건강한 발전 궤도로 되돌리기를 바란다.’ 솔직히 강 장관의 약속은 뚝 부러지는 데 비해 그들의 논평은 책임 회피적이며 애매하다. 중국도 저간의 상황에서 적지 않은 교훈을 얻었을 것임에도 여전히 고압적이다. 그렇기에 외교가 현실이어서 약간 더 줄 수도 있고 덜 받을 수도 있다고는 해도 손해 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미동맹도 울고 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어떻든 한중 관계는 다시 좋은 날이 왔다. 하지만 중국의 사드 몽니, 그 역사적 기억만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나쁜 역사의 반복을 막을 경계로 삼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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