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참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들 사이가 찰떡이 아닌 것은 드러났지만 북-중 혈맹 사이에 원색적으로 치고받았다. 그들 두 나라의 관영언론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자율성이 전혀 없어 일당 지배자 공산당이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두 나라 관영언론들에 나타나는 논조는 공산당의 주장을 되뇌는 앵무새의 지저귐과 같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북의 조선중앙통신으로 몹시 화가 났음이 역력해 보였다. 시늉만 하던 중국의 대북 압박이 미국과 유엔에 보조를 맞추어 장난 아니게 숨통을 조여 오는 상황과 관련해 뺨 때린 중국정부는 놓아두고 중국 언론에 대고 엉뚱한 화풀이를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중국정부의 의사에 논조를 맞추어 따라가는 인민일보, 환구시보, 인민망 등의 중국 관영언론들의 실명을 적시하며 이렇게 썼다. ‘미국과 그 추종 세력들의 제재 압박 광풍이 극에 달한 때에 중국 보도 매체들이 다른 주권국가의 노선과 체제를 공공연히 시비하고 헐뜯었다. 그렇게 푼수 없이 노는 것으로 보아 자국 인민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어지간히 잃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요약)’고 했다. 과거에도 한두 번 북의 관영언론이 중국정부를 집적거린 일은 있었으나 이처럼 분기탱천(憤氣撑天)하지는 않았었다. 더구나 이번에 북의 관영언론이 성토한 것은 실명으로 들먹인 중국 관영언론이 아니라 김정은 정권이 중국정부를 성토하고 중국정부에 열불을 토한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언론이 철저히 통제되는 사회에서 이 정도의 불협화음이 나오는 것은 피차에 그것이 축적돼 인내의 임계점(critical point)을 넘어섰음을 말해준다. 일컬어 혈맹이라 했지만 북-중 두 나라의 관계는 더는 손을 마주 잡고 갈 수 없는 갈림길에 봉착했다. 북은 중국이 언제까지라도 혈맹이며 후원국으로서 남아주기를 열망하겠지만 중국은 다르다. 미국과 유엔에 보조를 맞추지 않고 끝까지 북을 감싸다간 나라 전체가 폭삭 주저앉게 생겼다. 미국의 서슬이 너무 무섭다. 미국은 말하자면 중국에 제재의 눈을 피해 북과 계속 거래하려거든 미국과는 거래를 끊자고 중국을 매몰차게 몰아붙이고 있는 것과 같지 않은가. 미국은 중국의 최대시장이다. 그 거대 시장과 미국의 달러가 없으면 중국 경제는 무너진다. 더욱이 만약 세계적인 경제 강국들인 한국 미국 일본 3국이 합세하는 경제력이면 중국은 더 형편없이 초라해진다. 이제는 북과 내밀히 비밀스럽게 뒷문으로 거래하고 싶어도 하늘 바다 육지에서 독수리 눈을 뜨고 지키는 미국의 정보망을 피할 수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면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G2라고 큰소리는 치지만 그들은 허점이 너무 많다. 미국, 유엔과 보조를 맞추어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급선무이며 북과 같은 세계의 지탄을 받는 나라를 끝까지 거들고 나서줄 형편이 못된다.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의 신성한 안보 주권에 터무니없이 간섭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망(THAAD) 설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에 너무 주눅들 것 없다. 그래봤자 그들의 몽니에는 한계가 있다. 어떻든 북의 조선중앙통신의 도발적 성토에 중국 언론들도 바보처럼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중국 언론들은 한반도 전문가들을 인용해 대꾸하기를 ‘중국의 노력을 무시하지 말라. 조선중앙통신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중국의 노력을 왜곡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대북 군사 공격을 중단시키고 대화 재개를 위해 노력해왔다. 만약 중국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수차례 북한을 파괴했을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북의 핵 개발을 반대한다. 중국은 결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양측 관영언론은 서로 이렇게 치고받았다.

이런 필전(筆戰)이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은 얽히고 꼬여가는 두 나라 관계다. 특히 북의 처지를 냉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갈수록 운신(運身)의 여지가 좁아지며 제재의 압박감에 몸부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의 중국 관영언론에 대한 ‘도발’은 그로부터 울려 나오는 비명을 여실히 반영한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기실 북이 지금까지 버틴 것도 기적에 가까우며 다른 것은 몰라도 그 깡다구 하나만은 기네스북에 오를 만하다. 아마 지구상에서 북의 체제와 그 지도자 김정은만큼 지금과 같은 꽉 막힌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외부 압력으로부터 이만큼 버티어낼 수 있는 체제와 인물은 더는 찾아볼 수 없다. 혹여 우리가 저들의 그것을 절반만이라도 닮을 수 있다면 우리게는 핵 개발이든 뭐든 못할 일이 없을 성 싶다. 하지만 북에도 김정은에게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가혹한 시련의 계절이 오고야 말았다. 트럼프는 절대로 전임 오바마 대통령처럼 유약하지가 않다. 트럼프는 북의 기만술, 기만적 협상술, 벼랑끝 전술, 지연작전을 환하게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속아 넘어가지 않을 태세다. 트럼프는 적절하게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투입해 북을 견제하며 한편으로는 모골을 송연하게 하는 그의 거친 언어적 수사(rhetoric)를 그 같은 추종을 불허하는 무력으로 뒷받침해 북을 더욱 옥조인다. 전쟁이 훤한 대낮에 터지는 일은 거의 없다. 특히 세계 어느 곳에서든 매일 전쟁을 안 치르는 날이 없어 전쟁에 이골이 난 미국의 경우는 적들이 방심한 야밤에 기습하기를 즐긴다. 불꽃 놀이하듯 토마호크(Tomahawk) 미사일이 바그다드에 날아들어 작렬하던 1991년 사막의 폭풍작전을 떠올리면 잘 알 수 있다. 미군은 9월 23일 야밤에 오키나와 공군기지에서 떠오른 F15C 전폭기 편대로 호위하는 가운데 태평양 괌(Guam) 기지에서 발진한 죽음의 백조 B-1B폭격기 편대를 북한 동해의 국제공역 상공에 출격시켜 사막의 폭풍작전을 떠올리게 했다. 이에 북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전연 몰랐던지 김정은은 깊은 지하 벙커(bunker)로 숨고 그들 모두는 숨을 죽이고 공포에 떨며 이 무력시위를 지켜보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미국 폭격기 편대의 가공할 위력을 그들이 더 잘 안다. B-1B 1개 편대면 북의 대공미사일 사정권 밖에서 300~1000㎞ 떨어진 평양이든 어디든 적재 미사일과 폭탄 공격으로 전쟁 지휘부와 전쟁기반 시설을 초토화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만약 이날 북이 이들에 대들었다면 북한 전역에 불벼락이 내려치듯 했을 것은 불문가지다.

세계 각국의 단교(斷交) 도미노(domino)로 북의 고립은 가속화되고 있다. 아무리 기네스북에 오를 깡다구를 가졌지만 세계 전체를 적으로 해서 배겨낼 장사는 없다. 북의 살 길은 늦긴 했지만 핵을 포기하고 착하고 정상적인 국제 성원으로 데뷔(debut)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을 것 같다. 사실 그것이 우리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저들은 과연 어떤 길을 갈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또한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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