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싸움판 - 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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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판

임보(1938~  )

 

고기를 낚기 위해 물과 싸운 어부

곡식을 거두기 위해 흙과 싸운 농부

돈을 벌기 위해 잠과 싸운 상인

권력을 잡기 위해 표들과 싸운 정치인

그런데
시를 빚기 위해 나는 무엇과 싸우지?

(말〔言〕과 싸운다고?)

천만에, 소주와 싸운다!

 

[시평]

예로부터 시인들은 두주(斗酒)를 불사(不辭)하는 술꾼이라고 말들을 한다. 글을 쓴다면 으레 술깨나 먹는 사람으로 취급을 하고 들어간다. 실은 술을 조금도 못하는 사람도 시인들 중에는 없지 않아 꽤 많은데도 말이다.

글을 쓰는 문인들은 글, 곧 언어와 씨름을 한다. 좋은 표현을 얻기 위하여 이 말, 저 말, 저 낱말, 이 낱말을 찾아 마치 천지를 떠돌 듯이 말의 숲 사이를 떠돌아다닌다. 그러니 고기를 낚기 위하여 어부가 물과 싸우듯이, 곡식을 얻기 위하여 농부가 흙과 싸우듯이, 돈을 벌기 위하여 상인이 잠과 싸우듯이, 권력을 잡기 위하여 정치인이 표와 싸우듯이,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하여 말과 싸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천만에 말씀이다. ‘말’이라는 놈이 이상하고 이상하여 정상적인 생각 속에서는 잘 잡히지 않다가도, 술이라도 한 잔 들어가면 그만 그저 잘 잡히고마니 말이다. 그래서 시인은 소주와 싸운다. 한 잔, 두 잔 거듭되는 소주잔과 함께, 충만해진 감성과 함께, 자신의 깊은 내면에 잠겨 있던 말들이 그저 툭 툭 튀어나고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시인은 언어와 힘들여 싸울 것이 아니라, 소주와 싸워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예로부터 시인을 두주(斗酒)를 불사(不辭)하는 술꾼이라고 말들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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