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세상보기] 후보들의 선심 선거, 나라 돈이 누구 돈인데? - 선심과 안보와 일각의 통탄
[최상현의 세상보기] 후보들의 선심 선거, 나라 돈이 누구 돈인데? - 선심과 안보와 일각의 통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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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현 주필 

 

후보들의 선심 공세가 가장 극심하게 나타나는 것이 나라를 경영하는 대통령을 뽑는 대통령 선거 때다. 5.9장미대선 캠페인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다른 때보다 더 심하게 느껴지는 것은 특이하다 할 수 있다. 후보들은 선심 공세가 정책의 제시보다도 그들의 승리를 더 확실히 굳혀주는 효험을 발휘해줄 것으로 믿는 것 같다. 선거라는 것이 민심을 움직여 표를 얻어야 하는 것이기에 선거 때의 선심 공세는 ‘고질병(痼疾病)’이기는 하지만 필요악인 측면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다. 후보들의 선심 공세는 이 후보 저 후보 가릴 것 없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진다. 대통령 선거 때 그것이 유독 심한 것은 대통령이 국가 경영권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는 제왕적 권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그 행태는 눈 뜨고 봐주기 어렵다. 

이들은 특히 국민복지 즉 노인문제나 육아, 청년 취업과 관련해 마치 제 쌈지 속 돈을 풀듯이 나라 돈을 마구 풀어도 될 것처럼 말한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어르신 한 분당 얼마씩 드리겠습니다’ 또는 ‘제가 대통령이 되면 지금 얼마인 것을 얼마로 올려드리겠습니다’ 등, 속 보이는 사탕발림을 손톱만큼의 가책도 없이 외쳐댄다. 나라 돈이 마치 자신이 권력을 잡았을 때 선심 쓰라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더구나 그들의 선심 공세는 갈수록 범위가 넓어져 계속 이런 식으로 선거를 치러나가다가는 얼마 안 가 나라 살림이 거덜이 나지 않을까 불안해질 정도다. 두 말할 것 없이 뒷감당이 가능한 선심 공세라면 조금도 걱정할 일이 아니다. 도리어 신나는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수혜자는 수혜자대로 호주머니가 두둑해져 기분 좋은 일일 뿐 아니라 국민경제적 측면에서는 그것이 소비를 늘리고 경제를 살리는데 일조(一助)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뒷감당이 안 되는 일이라면 그것은 무책임한 정치인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할 블랙 코미디(black comedy)일 것이 틀림없다. 이 세상에 공짜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따라서 국가 재정에서 현찰을 지원해주는 것은 물론 만능의 권능을 가진 듯 유권자의 온갖 아픈 상처와 문제, 애로를 치유해주지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이 말하는 후보에 솔깃해지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다만 어느 정도까지다. 그렇기에 유권자들이 약간의 명철(明徹)만 발휘할 수 있어도 정치인들의 과도한 선심공세는 바로 유권자 자신들을 바보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나라 돈, 국가 재정은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거기다 재정이 풍족하거나 넉넉하지도 않다. 세계 어느 나라도 재정이 넘쳐나는 나라는 없다. 그렇다면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국민으로부터 세금으로 빼앗아오거나 털어오거나 옮겨와야 하는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렇게 세금으로 재원을 충당하지 않으려 한다면 예산상의 다른 비목(費目)의 지출을 줄여 당겨다  써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 필시 그러기가 쉽지만 국방비를 줄여야 되지 않을 것인가. 과연 지금과 같이 우리의 주변 외교 안보 정세가 소용돌이치는 판국에 이게 가능한가. 

또 우리가 정치인들의 선심 공세대로 다른 곳에 예산을 돌려써도 북핵과 군사도발에 맞설 수 있으며 강대국들의 위세와 그들끼리의 흥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리(事理)는 대충 이렇게 흐른다. 그럼에도 뾰족한 대책도 없이 후보들은 가는 곳마다에서 뒷감당이 불분명한 선심 공약들을 흩뿌리는 데 열중한다. 그렇다고 당장은 그들이 터무니없이 불가능한 것만을 쏟아내었다고 할 근거도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선거 운동이 그런 경향으로 기우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을 국민들은 경계해야 한다. 냉정히 말한다면 위민위국(爲民爲國)의 충정이 넘치는 후보라면 유권자를 꼬이는 그 같은 달콤한 사탕발림보다는 안팎의 도전에 대해 고통과 땀, 용기와 단합을 국민에게 더 요구해야 하며 마땅히 할 때다. 하지만 감히 표 떨어질까 두려워 그렇게 하질 못하고 있질 않나. 그것이 참으로 아쉽다. 이래서 이 선거판에는, 더욱 국가가 위기에 처한 이 비상한 시국에, 이 시대와 국민이 찾는 진정한 애국애족의 큰 지도자와 큰 재목이 출현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통탄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아직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을 뿐인가.

최근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Mike Pence)는 동맹국에 권고하듯이 “평화는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고 했다. 바꾸어 말하면 전쟁을 막는 궁극적인 방책은 ‘힘을 기르는 것’이 된다 한 것과 같다. 전쟁은 말로써 하지 말아야 한다고 외치거나 외교적인 노력의 전개만으로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기본적으로 적이 두려워할 만한 국력 및 군사력과 유비무환(有備無患)의 대비가 돼 있어야만 막아질 수 있다. TV토론에서 대부분의 대통령 후보들은 미국에 의해 있을지도 모를 북에 대한 선제타격을 상정하고 전쟁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고들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쟁을 막기 위해 미국 대통령과 중국 국가 주석에 전화를 걸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막아질 전쟁이라면 백번이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나. 그것에만 의존하는 것은 힘이 없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하는 것과 같은 궁여지책이며 하책(下策)이기 쉽다. 전쟁이 없어야 된다고 얘기를 했으면 전쟁을 막을 야무지고 실질적인 대비태세를 제시하는 것은 물론 불의의 상황이 터졌을 경우를 가정해서는 필승의 단호한 대처방법을 설파했어야 충실한 내용을 갖는 대답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똑똑한 후보라야 안심하고 국가경영을 맡길 만한 진짜 지도자감이라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아무리 봐도 지금은 비상한 시국이다. 국민들의 우려가 크다. 후보들이 권력의 꿈에만 취해 선심 행각으로 그 우려를 비켜 가려하면 최종적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국민은 달콤한 말에도 쉽게 솔깃하지만 깊은 심중에는 인물의 크기와 됨됨이로 후보들을 검중하는 냉철하고 무서운 잣대도 숨기고 있다고 봐야 옳다. 후보들이 아무리 가면을 쓰고 가장하려 애써도 국민들은 큰 인물을 알아보는 직감이 있다.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후보들은 달콤한 공약을 남발하기보다 자신의 솔선과 실천을 전제로 국민에게 고통과 땀도 감히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지도자를 지금 국민은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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