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하필 장미의 계절 5월의 아흐렛날에 탄핵으로 궐위된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치러진다. 그래서 ‘장미 대선(大選)’이다. 그 선거가 낭만적인 그 이름에 걸맞게 향기롭고 아름다운 선거 축제가 돼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지 않을 사람이 없다. 선거 운동 기간은 불과 30여일로 기록적으로 짧다. 후보들은 그 짧은 기간에 전국을 누비며 압축적인 성과를 일구어내야 한다. 그렇긴 하지만 선거 운동 기간이 후보자들에게 꼭 짧고 모자라는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법률상의(de jure) 선거 운동 기간이 그런 것이지 사실상(de facto)의 선거 운동은 전임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편법으로 이루어져왔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다음 대통령 선거 운동이 시작되는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식’의 항시 과열 대통령 선거판이 벌어지는 것이 우리네 실정이다. 이에는 법도 눈을 감는다. 따라서 출마자들에게는 실질적으로 시간이 모자라지 않다. 다만 그 시간이 국리민복을 위한 정책 개발과 정책 대결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쓸 데 없는 곳에 낭비되고 있을 뿐이다. 법정 선거 운동 기간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들은 기실 국민과는 상관없는 그들끼리의 리그전, 이른바 진영 논리에 의한 프레임(frame) 전쟁에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한다. 이런 싸움에 아름다운 패배란 있을 수 없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승리만이 전부이며 의미를 가진다. 동시에 이런 정치의 중심에 진실로 존중받는 국민의 자리가 있을 턱이 없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정치인들의 권력 놀음과 부귀공명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지나친 과장은 아니다.

선거 운동이 본격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치달리며 그들끼리의 난타전이 재미나다. 국민은 뒷전이고 싸움이 먼저인 것 같다. 벌써 그런 일로 두, 세 합(合) 정도 겨루었다. 원래 말싸움이 그렇듯이 일방적인 승리는 없다. 봄이 무르익듯 선거전이 ‘농염(濃艶)’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중 하나가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사이에 지지율을 두고 벌어진 공방이다. 안 후보는 오랫동안 이른바 ‘대세론’을 구가해오던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추격하는 입장에 있었다. 그는 각종 여론 조사에서 바닥을 기어왔으며 문 후보에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성 보였다. 그 같은 처지에서도 선거는 결국 두 사람 간의 대결 구도로 치러질 것이라고 공언해와 그 진의가 알쏭달쏭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고 나서 그의 지지율은 수직으로 급격히 뻗어 올라갔다. 어떤 조사에서는 드디어 그가 문 후보를 앞서기도 했다. 

이런 변화에 문 후보 진영이 놀라고 당황한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비상식적’이라며 선거관리위원회에 조사까지 의뢰한 것은 골프 경기에서의 ‘OB(out of bounds)’에 가까운 실책 같다. 좀 엉뚱해 보인다. 지금까지의 여론 조사가 문 후보의 ‘독주(獨走)’를 알릴 때는 아무런 말 없었지 않나. 말하자면 조사 결과가 불만스럽게 나오자 화를 낸 것인데 노림만큼 호소력이 발휘된 것 같지가 않다. 차라리 무시해버렸으면 ‘패권적 발상’을 보여주었느니 뭐니 하는 아픈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됐을 것 아닌가. 어차피 여론조사는 후보들의 활약과 그에 변덕스럽게 반응하는 민심에 따라 엎치락뒤치락 할 수밖에 없다. 그것에 불만을 가져본들 모양만 사나워진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민하게 대처하는 것이 최선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때 그것을 굳히려 노력하는 것은 더 좋은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안주’하려 한 인상을 풍기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또 있다. 적대 진영에 비난과 저주의 화살을 날리는 문자 폭탄이 구설(口舌)을 일으켰다. 이것에 대해 공격자 진영의 후보는 강한 질책은커녕 도리어 선거 경쟁에서의 ‘양념’이라고 했다나 해서 한바탕 서로 치고 받았다. 과연 그것이 ‘양념’일 것이냐 상처에 뿌린 ‘소금’이냐로 시끄럽게 다투었다. 나중에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해명을 한다고는 했지만 무의식 중에 숨긴 본심을 드러낸 ‘프로이디언 슬립(Freudian slip)’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아주 떨쳐버리게 할 수는 없었다. 한 번 뱉은 말은 이렇게 주어 담기가 어려운 법이다. 사람들은 흔히 정치에 좌절하고 반감을 가지면서도 결코 정치와 정치인에 무관심하지 않다. 아니 무관심 할 수 없다. 이는 납득하지 못할 이율배반은 아니다. 그만큼 정치는 사람의 행위와 생활을 지배하며 공동체 유지와 운영을 위한 중심적 가치이자 최상위 개념이다. 정치 행사만큼 흥행을 거두는 행사가 없다. 특히 선거가 그렇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권력을 결정하고 국가원수를 뽑는 대통령 선거는 전 국민을 들썩거리게 한다. 지금 전국이 들썩거린다. 그렇지만 3류 영화의 싸구려 흥행처럼 흘러가는 것은 안 좋다. 지지율 공방, 문자폭탄 시비와 같은 것으로 싸울 수는 있지만 지나치면 모두 손해다. 정치가 총체적으로 희화화되고 정치 불신이 위험수위로 갈 수 있다.

과거냐 미래냐, 나뉨이냐 통합이냐, 사드(THAAD)의 배치냐 철회냐, 한미동맹의 강화냐 약화냐, 중국과 북한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대답이 급한 시대적 현안이며 난제들 중의 일부다. 냉정하게 볼 때 진영 논리의 족쇄를 벗어 던지면 답은 자명해진다.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대답을 찾을 수 있다. 진영 논리에 의한 이분법적 정치 프레임 싸움은 분명히 한 물 갔으며 가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 묘역 방문을 망설이는 것도 더 이상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국민을 정치의 반쪽 프레임에 가두려는 시도는 성공을 거두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정치인들은 변해야 하며 환골탈태돼야 한다. 이제는 그들의 리그전만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진실로 국민을 위한 정치 프레임을 실천하는 정치인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5.9 장미대선이 바로 그런 정치인을 부르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렇다면 출마자들은 별 것도 아닌 일로 티격태격 싸울 일이 아니라 국가적 중대 현안에 대한 대답을 놓고 치열하게 국민 앞에서 겨루어야 한다. 국리민복을 위한 그들의 정치철학을 펼쳐보여야 한다. 더는 그들 자신이, 그들이 청산을 부르짖는 온갖 사회적 적폐와 만악(萬惡)의 근원이며 그들이 바로 청산대상 1호라는 비난을 받지 말아야 한다. 5.9대선 과정이 그들의 새로워진 모습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다. 그래야 탄핵의 정치태풍이 할퀸 자리를 새 정치로 메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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