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고조가 세상을 떠나자 여태후는 척부인의 아들 조왕 여의를 장안으로 불러들여 짐독을 먹여 죽였다. 그런 다음 척부인의 손과 발을 자르고 귀를 지져 도려내고 다시 독을 먹여 목줄기를 태웠다. 태후는 척부인을 변소에다 던져 넣고 ‘사람 돼지’라 불렀다. 혜제는 그 사실을 목격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다. 아들 혜제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보이지 않던 태후가 친정 식구들을 조정의 요직에 앉히자 그때서야 슬피 울었다.

여씨 일족의 전권이 시작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신제 원년(기원전 188) 이후 천하의 법령은 모두 여후가 포고했다. 여후가 사실상의 천자가 된 것이었다.

여후는 여씨 일족을 제왕으로 세우기 위한 회의를 열고는 우승상 왕릉에게 묻자 그가 대답했다.

“일찍이 고조는 백마를 제물로 바치시면서 유씨 이외의 성을 가진 자가 왕이 될 때에는 천하가 단결해서 이를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말씀이 있는 이상 여씨를 왕으로 세울 수는 없습니다.”

태후가 이번에는 좌승상 진평과 강후 주발에게 묻자 두 사람이 대답했다.

“고조께서 천하를 통일하셨을 때는 유씨의 왕자로서 왕을 세우셨습니다. 지금은 태후께서 나라의 모든 일을 결제하고 계시니 형제분이나 여씨 문중에서 왕을 세우신다 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여후는 그들의 말을 듣고 마음을 풀고 회의를 마쳤다.

조정에서 물러나온 왕릉은 진평과 강후 주발을 꾸짖었다.

“도대체 귀공들은 고조와 서로 피를 마시며 맹세하던 그 자리에 있었단 말인가. 고조께서 돌아가시자 태후가 실권을 잡고 여씨 일족을 왕으로 내세우겠다는 때에 ‘지당하십니다’ 하고 고해바치니 어찌된 영문이오? 이래 가지고서야 지하에 계신 고조의 얼굴을 어찌 뵈올 수가 있겠소?”

두 사람이 대답했다.

“이 자리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로 말하면 우리가 귀공을 따르지 못하오. 그러나 한나라의 사직을 편안히 하고 유씨 혈통을 지킨다는 점에선 우리가 귀공의 위요.”

왕릉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혜제의 황후는 선평후 장오의 딸인데 아이를 낳지 못했다.

태후는 황후가 임신한 것처럼 꾸미고는 혜제가 후궁에서 낳은 아들을 빼앗아 왔다. 그리고는 그를 낳은 어머니를 죽이고 그 아들을 태자로 삼았다. 혜제가 세상을 떠나자 그 뒤를 이은 것이 그 태자다.

이윽고 태자가 세상 이치를 가늠할 나이에 이르렀다. 그러자 우연한 기회에 자기를 낳은 어머니가 죽임을 당했고 황후는 친어머니가 아님을 알게 되자 화가 났다.

“제 아무리 태후라 하더라도 내 어머니를 죽이고 나를 황후의 친아들이라고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내가 아직은 어린애지만 어른이 되면 가만두지 않겠다.”

마침내 이 말이 태후의 귀에 들어갔다.

태후는 이대로 두었다가는 장래에 화근이 되겠다고 생각하여 그를 영항에 가두었다. 그리고는 황제의 병이 위독한 상태라고 소문을 퍼뜨리고 가까운 신하들에게까지도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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