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여 태후는 고조가 죽자 평소에 앙심을 품고 있던 고조가 무척 아끼던 척 부인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척 부인을 궁궐 여관의 감옥에 감금하고 그의 아들 조왕 여의를 궁궐로 불러 올려 짐독을 먹여 죽였다. 그런 다음 척 부인에 대한 복수를 시작했다.

여후는 우선 척 부인의 손과 발을 잘라 버렸다. 눈을 후벼내고 귀를 불에 지져서 도려내고 약을 먹여 목줄기를 태워 버렸다. 그리고는 변소에다 버리고 ‘사람 돼지’라 이름 붙였다.

며칠 뒤 아들 혜제를 불러 ‘사람 돼지’를 보여 주었다. 혜제는 처음에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나중에 척 부인이라는 소리를 듣자 통곡하다가 앓아누워 버렸다. 혜제는 1년이 지나도록 회복되지 못했다. 병석에서도 혜제는 태후에게 사람을 보내 탄원을 했다.

“그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저는 더 이상 천하를 다스리지 못하겠습니다.” 그 뒤 혜제는 정치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매일 같이 술과 여자로 세월을 보냈으므로 스스로 목숨을 단축시켰다.

혜제 2년(기원전 193년)에 초나라 원왕 교(혜제 숙부)와 제왕 비(혜제 이복 형)가 조정에 들어 왔다.

10월에 혜제는 여후를 모시고 제왕과 주연을 베풀었다. 혜제는 제왕이 자신의 형이었으므로 그를 윗자리에 앉혔다. 그 일이 여후의 비위를 건드렸다. 여후는 짐독을 탄 술잔을 두 사람 앞에 놓고 제왕에게 먼저 마시라고 했다. 제왕이 일어섰다. 그러자 혜제도 일어서며 술잔을 함께 들고 건배하려 했다. 여후는 당황하여 갑자기 혜제의 술잔을 엎어 버렸다.

수상하게 생각한 제왕은 술잔을 도로 놓고 취한 척하면서 도망쳐 나왔다. 나중에 알아보니 역시 짐독이었다. 제왕은 섬뜩했다. 그는 몹시 안절부절 했다. 그러자 제나라 내사인 사가 꾀를 내어 아뢰었다.

“태후의 친자식은 혜제와 노원 공주뿐입니다. 그런데 주상이 가지고 있는 영토는 70여 성이나 되는데 외딸인 노원 공주는 불과 몇 개의 성 밖에 없습니다. 주상께서 내리신 영토를 공주에게 바치신다면 태후는 마음을 풀 것이며 따라서 주상께서도 평안하심을 얻으실 것입니다.” 제왕 비는 그의 건의를 받아들여 성양 땅을 바치고 공주를 왕태후라 불렀다.

그제야 태후는 마음을 풀었다. 제왕 비는 비로소 숙소로 돌아가서 주연을 베풀고 기분 좋게 술을 마셨고 자기 영지로 무사히 돌아갔다.

혜제 7년(기원전 188) 8월 무인 날에 혜제가 세상을 떠나자 대상이 포고됐다. 여후의 눈에는 눈물을 볼 수 없었다.

시중 장벽강은 유후 장량의 아들로 이때 나이가 겨우 15살이었으나 승상 진평에게 말했다. “태후께서는 외아들인 혜제를 잃고도 조금도 슬픈 표정을 짓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진평이 잘 모르겠다며 까닭을 물었다.

“혜제에게는 성장한 아들이 없으므로 태후는 중신들에게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승상께서는 이 기회에 여태, 여산, 여녹을 장군으로 임명하여 남북 양군의 병권을 맡기시도록 하시고 나아가 여씨 일족을 궁중에 불러들여 요직을 맡기도록 건의하십시오. 그러면 태후의 걱정도 풀릴 것이며 따라서 여러분에게도 화가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승상은 곧장 그의 제안을 실행에 옮겼다. 태후는 몹시 기뻐했으며 그 뒤부터는 울음소리에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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