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동생 주허후 유정의 밀지를 받은 제나라 왕은 제후들에게 밀사를 보내 자신의 결심을 나타내었다. 여씨 일족을 몰아내고 유씨의 왕위 계승을 보존하자는 충동에 제후들은 각지에서 군사를 보내왔다.

궁궐에서는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장군 관영에게 군사를 주었으나 그마저 배신할 움직임이 있었다. 그 점을 알아차린 주발은 승상 진평과 의논해 여녹과 가까운 역상의 아들 역기를 이용할 계략을 꾸몄다.

드디어 역기는 여녹을 만났다.

“고조가 여후와 더불어 천하를 통일한 후 유씨 문중에서는 아홉 명, 여씨 문중에서는 세 명의 왕이 나왔습니다.

이는 모두가 중신들과 합의에 의한 것으로서 그 뜻을 모든 제후들에게 알리고 제후들도 이를 승인했습니다.

지금은 태후가 돌아가시고 황제는 아직 어리십니다. 이와 같은 때 귀하는 조왕이면서도 영지에 부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라의 우두머리 상장군의 자리를 차지한 채 군부를 손에 넣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군신 제후들에게 공연한 소리를 들어도 하는 수 없습니다.

어째서 귀하는 상장군직을 버리고 군부를 태위에게 맡기지 않습니까? 양왕에게도 상국의 인수를 반환하고 중신들과 서약하여 영지에 부임토록 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제나라의 반란도 수습될 것이고 중신들 또한 마음을 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귀공도 마음 편히 조나라의 왕으로 계실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만세의 이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녹은 역기의 말이 옳음을 깨닫고 장군의 인수를 반환하여 군대를 태위의 지휘 아래 두도록 즉시 사신을 보내어 여산을 위시한 장로들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찬반이 반반씩이어서 좀처럼 결정이 되지 않았다.

여녹은 역기와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였으므로 때마침 그를 데리고 사냥을 나갔다. 사냥 도중에 여녹이 숙모인 여수의 집에 들르니 여수는 호통을 쳤다.

“상장군인 주제에 군대를 떠나다니 대체 어쩔 셈이냐? 우리 집안은 이제 망했구나!”

그리고는 집안의 패물을 모조리 끄집어내어 마당에 내팽개쳤다.

“어차피 빼앗길 것인데 뭘, 이렇게 버리는 게 낫지!”

8월 갑진날 아침 어사대부의 직무를 대행하고 있던 평양후 줄은 상국 여산을 만나 정무를 상의하고 있었다. 그때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낭중령인 가수가 돌아와 여산을 보자마자 나무랐다.

“왜 빨리 영지로 돌아가지 않으셨소? 이제는 때가 이미 늦었소. 다시는 돌아갈 나라가 없소이다.”

가수는 관영이 제, 초와 연합하여 여씨 일족의 토벌을 음모하고 있는 사실을 상세히 보고하고 빨리 조정을 손에 넣으라고 여신에게 독촉했다.

곁에서 이 보고를 엿들은 평양후는 즉시 승상 진평과 태위 주발에게 달려갔다.

주발이 북군 사령부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보초가 이를 막았다. 그러나 부절 관리자인 양평후 통이 부하에게 부절을 건네주고 황제의 명령이라고 속여서 비로소 태위 주발은 북군에 들어 갈 수가 있었다.

태위는 다시 역기를 불러 전객(제후들의 감시역)인 유계와 함께 여녹에게 보냈다.

“황제는 태위에게 북군의 지휘를 명령하시고 귀공에게는 영지로 돌아가도록 바라고 계시오. 지금 곧 장군의 인수를 반환하고 출발하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일이 벌어지고 말 것이오.”

여녹은 그것이 역기의 계략이라고는 짐작도 못하고 인수를 유계에게 넘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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