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한 고조는 천하를 통일한 뒤 수도를 낙양에서 관중으로 옮기고 죄수들에게 대사령을 내렸다. 각 지역에서는 왕이나 영주들의 반역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고조는 몸소 군사들을 이끌고 정벌에 나서 대부분 진압을 했다. 고조 6년 12월 초왕 한신이 반역을 도모한다는 것이었다. 고조는 측근에게 대책을 물었다. 측근들은 모두 당장 토벌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조는 진평의 계책을 이용해 운몽 지방을 방문한다는 구실 아래 제후들을 진나라에 소집했다. 그러자 마중 나온 한신을 그 자리에서 체포했다.

고조 7년 흉노가 마읍의 한왕 신을 공격해 왔다. 한(韓)왕은 이때를 이용해 흉노와 동맹을 맺고 태원에서 반기를 들었다. 한편 백토의 만구신과 왕황이 지난날의 조나라 장군 조이를 왕으로 옹립하고 반역을 일으켰다. 고조는 이번에도 친히 군사를 이끌고 나갔다. 때마침 매서운 추위로 병사의 3할이 동상에 걸려 손가락을 잘리는 고통 등을 겪은 뒤에 가까스로 평성에 도착했다. 고조는 흉노의 정벌을 마치고 돌아온 뒤 장락궁이 완성된 장안으로 수도를 옮겼다.

8년에 고조는 동쪽으로 나아가 동원 부근의 한왕 신의 잔당을 토벌했다. 도중에 백인을 지날 때 조나라의 대신 관고의 일당이 고조의 암살을 기도했다. 고조는 어쩐지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곳에서 머물지 않고 곧장 떠났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관고 일당의 음모가 고조 9년에 발각돼 이들의 부모, 형제, 처자가 모두 처형됐다. 조왕 오는 선평후로 좌천당했다. 같은 해 초나라의 명문 소씨, 굴씨, 경씨, 회씨 등과 제나라의 전씨 등을 수도에서 가까운 관중으로 옮겨 살게 했다.

10년 8월 조나라의 대신 진희가 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9월에 고조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갔다. 11년 고조는 한단에 주둔하여 진희 토벌에 힘썼으나 용이하지 않았다. 진희의 부장 후창이 1만여의 군사를 지휘하여 유격전을 펼쳤다.

이듬해 봄이었다. 체포되어 회음후의 신분으로 떨어진 한신이 관중에서 모반을 일으켰다. 여후에게 붙잡힌 한신은 부모, 형제, 처자식이 모두 처형됐다.

그해 여름 양왕 팽월이 반역을 꾀한 죄목으로 촉으로 유배당했다. 고조는 그의 부모, 형제, 처자를 처형해 버렸다. 가을인 7월 회남왕 경포가 반역하여 동쪽으로 나아가 형왕 유가의 영토를 점령하고 다시 북상하여 회수를 건넜다. 고조는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스스로 나섰다. 그는 공자 장을 회남왕으로 봉했다.

한나라 12년 10월 고조는 경포의 반란군을 회추에서 공격했다. 경포가 도망가자 그 추격은 부하에게 맡기고 장안으로 개선했다. 돌아오는 길에 고향인 패에 들러 잠시 머물렀다. 머무는 동안 그는 옛 친구와 삼로 그리고 젊은이들을 초대하여 성대한 잔치를 벌였다. 잔치를 벌이기 전에 고조는 패의 어린이 120명을 모아 놓고 자신이 지은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잔치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고조는 축(비파)을 타며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바람은 불어치고 구름은 난다/ 천하에 위세를 떨치고 나는 고향에 돌아왔다/ 모두 일어나 이 나라를 지키자.”

소년들로 구성된 120명의 대합창이 시작되자 고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춤을 추었다. 그는 춤을 추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고조는 경포를 토벌할 때 화살에 맞아 상처를 입었다. 그 상처가 자꾸 악화됐다. 여후가 의원을 불러 진찰을 했는데, 병은 틀림없이 낫는다고 장담했다. 그러자 고조가 화를 냈다.

“짐은 서민 출신으로 칼로 천하를 제패했다. 이건 천명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운명은 하늘이 정하는 거야. 가령 편작 같은 명의라도 운명을 고쳐 놓을 수는 없다.” 고조는 치료는 시키지 않고 황금 50근을 주어 의원을 돌려보내고 말았다.

여후가 물었다.

“페하께서 만일 안 계시고 소하가 죽으면 누구를 후임으로 선택하면 좋겠습니까?”

“조삼(曹蔘)이 좋을 거요.”

여후가 그 다음 순위를 물었다.

“왕릉이 좋겠지. 그러나 그는 머리가 확 트이지 못했어. 진평에게 보좌하도록 해야 할 거야. 진평은 재주가 뛰어난 인물인데 그렇다고 그에게 모두 맡기면 또 위험해. 주발은 중후한 인물이지만 좀 멋대가리가 없어. 하지만 우리 유씨들을 영원케 할 신하라면 역시 주발밖에 없을 거야. 그를 태위에 임명하면 되겠소.”

“주발 다음에 또 누구를?”

“거기까지는 당신이 몰라도 되오.”

4월 갑진 날에 고조는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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