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지지율 1위 대선주자다. 그런 위치에 있지만 왠지 초조해 보인다. 지지율이 더 오르지 않는다. 지지자들을 일컫는 ‘문빠’, 그들 이상으로의 외연확장이 정체돼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잇따른 강성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임기를 마치고 곧 귀국한다. 그와도 연관이 있다. 이 때문일까. 문 전 대표가 그만 오버하고 말았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을 기각하면 그 다음은 혁명밖에 없다”는 언급이다. 법으로 안 되면 민중의 물리력으로 국정을 뒤집겠다는 것인가. 막 심리를 시작한 헌재 재판관들에게 여론재판을 종용하는 위험천만한 말이다. 법조인 출신이면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뒤집는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혁명’ 운운은 내란목적 선동혐의에도 해당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문제는 그만큼 민심이 간절히 무언가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민초들의 삶이 힘들다. 쌓이고 쌓인 분노와 열정을 인내하기엔 거의 폭발 직전 임계점이다. 양극화 현상에 지치고 이념논쟁에 피로한 민심을 꿰뚫고 있다는 듯 민주당이 발 빠르게 12대 정책을 발표했다. 정경유착을 없애기 위해 전경련을 해체하고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며 기업 돈으로 농어촌기금 1조원을 조성하겠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런 가운데 기업사정에 밝은 한 지인의 전언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들이 향후 국내투자를 줄이고 대신 해외직접투자를 늘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고 한다.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를 감안, 안전한 납품을 위해 현지 생산라인 설립투자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마음은 국내 정치불안정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다. 경제개혁의 칼날이 언제, 어떤 식으로 기업 심장부에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안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과제는 경제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혁명과 반란은 반드시 지독한 굶주림과 착취가 그 배경으로 차지한다. 물론 조금이라도 광화문 촛불혁명의 순수성이 왜곡돼선 안 된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탄핵정국도 경제난이 동력이 됐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올 3분기 경제지표에 따르면 여덟 가구 중 한 가구가 한 달 100만원 미만의 돈으로 온 가족이 생활했다. 80% 정도이던 평균 소비성향이 71.5%까지 내려가며 자영업자들이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미국의 금리인상까지 겹쳐 내년 한국경제위기설까지 번지고 있다.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심리에 ‘게이트’가 서민들을 밑바닥까지 찍어누르고 있다. 탄핵정국, 좌우대치정국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결국 대선이 끝나봐야 무언가 가닥이 잡힐 듯하다. 하지만 그 후유증이 회복가능한 수준일지 어떨지 염려스럽다.

다소 억울한 점이 있다고 해도 ‘법률미꾸라지’들의 조언을 물리쳐야 했는데. 어차피 통치의 동력을 잃은 시기인 임기말 박 대통령이다. 1차 담화 때 대승적인 마음으로 사임했으면 어땠을까 한다. 현 정부의 무능·무책임을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면서 말이다. 그랬다면 거국내각으로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고 조기대선으로 경제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 아직도 실기(失機)한 게 아니다. 탄핵과 상관없이 지금이라도 퇴진해야 한다. 철저한 진상규명은 필수이지만 퇴진한 대통령 개인에 대해서는 국민의 시선이 바뀔 수도 있다.

다만 국민은 변화와 개혁을 원한다. 경제살리기와 양극화현상 해소를 위해서도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 헌법도, 선거법도, 경제관련법도 획기적으로 변모돼야 한다. 재벌이야 역대정부의 고도성장 정책으로 누릴 만큼 많이 누렸지 않은가. 어느 여권 인사의 말처럼 정치인들도 해먹을 만큼 해먹지 않았는가. 작금 임박한 듯한 새누리당 비박 국회의원들의 분당이나 정가에서 새로 흘러나오는 ‘반기문-손학규 연대론’ 같은 것도 다 변화와 개혁을 간절히 바라는 민심을 주춧돌로 한 것이다. 과거처럼 크다고 무조건 다 좋고, 그저 높다며 갑(甲)질하고 군림해서는 안 된다. 기득권층 스스로 함께 나누자며 내려놓아야 한다. 큰 ‘대(大)’라는 글자가 들어있는 이름들이 있다. 예컨대 ‘대통령’ ‘대기업’ ‘대형아파트’ 등이다. 큰 ‘대(大)’는 이제 작을 ‘소(小)’를 배려하자.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권위와 이익을 ‘소시민’ ‘중소기업·자영업자’ ‘소형 빌라·나홀로아파트’와 공동분배해야 한다. 정치인 기업인 금수저들의 의식이 깨어나기를 시대가 요구하고 있다. 왜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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