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를 계기로 부패가 제도화된 한국의 감춰진 이면이 드러났다. 이 기회를 ‘제도적 부패(systemic corruption)’를 청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뉴욕타임스)

가정분란으로 동네 구설수에 오른 것처럼 부끄럽다. 따끔한 질책이라 마음 아프고 미운 구석도 있지만 우리는 겸허해야 한다. 국가 위신이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해외투자가 수십조원씩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이웃나라 중국은 뜨거웠던 한류바람이 식어버렸다. 환호했던 한국의 화장품도, K팝도 배척당하고 있다. 자영업자 폐업이 속출하고 청년실업도 사상최고수준이다. 한국이 폭풍우에 가라앉고 있는 난파선으로 여겨지거나 회복불능의 지구촌 낙오자로 콕 찍혀버린다면 난감한 일이다.

우려되는 문제는 또 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다름 아닌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죽기살기로 싸우는 부분이다. 작금의 보수와 진보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의 투쟁일 뿐이다. ‘올 오어 낫싱’ 게임으로 국론분열이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우선 도도한 촛불민심을 업고 점령군처럼 득의만만한 태도인 야권부터 얼음물을 머리에 덮어써야 한다. 친야 시민단체의 기획집회를 선봉장으로 해 권력을 쥐려는 생각뿐인 사색당파라는 여론이 만만찮다. 그런 안이한 생각으로는 절대로 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 근무시간에 국회 앞 시위에 참여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시대착오적인 댓글부대 호헌파의 행태도 어이없다. 최순실에 휘둘린 쪽뿐만 아니라 기존의 정치권 전체가 국민에게 큰 환멸을 안겨줬음을 깨달아야 한다.

보수라는 이름을 앞세워 역공을 펼치는 쪽도 앞으로 더 오버하면 낭패다. 진영이기주의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일반 민심임을 알아야 한다. 혹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과거 정권이 해먹은 데 비해 크지 않다고 강변한다. 과거 정권이 어느 정권들을 가리키는지는 짐작된다. 그러나 1천억원을 훔치건, 1억원을 훔치건 마찬가지다. 국정을 유린했다면 내 호주머니를 불리건 친구 호주머니에 넣어주건 범죄 성립에는 차이가 없다. 대통령 임명장 받은 바로 그 검찰이 용기있게 밀어붙인 수사가 아닌가. 헌법과 법률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국민을 배신했다면 법대로 처벌받아야 한다. 종북논리 척결을 앞세우거나 간첩 운운하는 보수단체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애써 말을 아끼고 자제함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제도적 부패’를 씻어내기 위한 노력은 시스템 측면에서 속히 단행돼야 한다. 개헌과 공직선거법 개정부터 필수적이다. 최고권력자에게 줄만 잘 서면 된다는 풍토를 바꿔야 한다. 국회와 정부가 사사건건 충돌해서도 국정운영이 어렵다. 전제적(專制的) 대통령제를 미련없이 내다버려야 하는 이유다. 영·호남 지역주의에 편승하며 금배지를 달게 해 선거꾼만 좋은 일 시키는 망국적인 현실도 혁파해야 한다. 국회의원을 스웨덴처럼 봉사직으로 바꾸고 중·대선거구제와 독일식 비례대표제, 양원제 도입 등을 검토해야 한다. 국민리콜제 등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반영하고 검찰 등 사정기관에 대한 효과적인 사정(司正) 수단도 강구해야 한다. 개인의 기본권을 보다 보장할 수 있는 선진복지적 장치도 면밀히 마련돼야 한다.

‘피의자 박근혜 대통령’ 한 사람의 잘못에만 국한될까. 탄핵정국은 대통령을 옹립해 과실을 챙기려한 탐욕의 비선실세, 안하무인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측근들, 그리고 패거리정치에 빠져 국민을 망각한 친박 세력이 없었다면 탄생되지 않았다. ‘선거의 여왕’을 앞세워 깃발만 꽂으면 된다며 아부에 몸을 던진 지역 정치인들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폭탄’ 최순실의 존재를 알고도 모른 척하며 대통령 뒤에서 호가호위한 ‘미꾸라지 실세들’은 자성해야 한다. 아직 “단 한 번도 사익을 취하지 않았다”거나 “피눈물난다는 말을 알겠다”고 되뇌고 있는 박 대통령이다. 진심어린 통회(痛悔)가 담기지 않은 메시지는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쪽으로 물꼬를 틀 수 없다. 탄핵보다는 사임이 여러모로 바람직하다. 누구라도 나서 직언·충언을 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다. 이제라도 방향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모두 뼈아픈 역사적 후회를 남기게 될지 모른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킴벌리 커버거.)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