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16일 JTBC는 ‘세월호 관련 청와대 문건’으로 보이는 자료를 공개했다. 방송은 대통령 보고용으로 보고 있다. 시점은 2014년 6월 하순. 우선, 문건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여객선 사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문건은 “지지도 상승 국면에서 맞닥뜨린 ‘여객선 사고’ 악재가 정국 블랙홀로 작용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지지도가 60%대에서 40%대로 내려앉았다고 걱정하고 있다. “비판 세력이 여객선 사고를 빌미로 투쟁을 재점화하려는 기도를 제어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 “중도 성향 가족대책위 대표와 관계를 강화해 우호적 여론을 확산해야 한다”고 했다. 또 “보수단체를 활용해 적극적인 맞대응 집회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용이 충격적이다. 우선, 세월호 참사가 단순 ‘여객선 사고’인가 하는 점이다. 그날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친 까닭이다. 그날 사건이 보고된 뒤 8시간 반이 지난 오후 5시 30분이 돼서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나타난 대통령이 말한 첫 마디는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던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였다. 국민 모두를 충격에 빠트린 말이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들으면 대통령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게 된다. TV도 안보고 왔단 말인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으면 모두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의 어느 전문가는 배의 후미에서 구조를 했다면 100~200명은 더 구조할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침몰 원인부터 구조과정에 이르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이 제기되는 사건이 세월호 참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보고 문건에는 ‘세월호 참사’라고 적지 않고 ‘여객선 사고’라고 적고 있다. 책임회피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본다. 이후 정부 인사들과 새누리당 의원들이 ‘세월호 참사가 교통사고에 불과한데 왜 대통령 책임을 들먹이냐’고 공격한 이유를 알 만하다. 

선체인양이나 진실규명, 시신수습, 유가족의 치유와 생활안전, 민간잠수사의 안전과 치료, 재발방지 대책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지지도 추락에만 관심이 가 있다는 점도 놀랍다. 특히 비판세력을 적대하는 태도는 이해 할 수 없는 대목이다. 문건이 나온 지 3개월 뒤 박 대통령은 “세월호법도 순수한 유가족 마음을 담아야 하고 희생자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외부 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건의 기조 그대로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에서 보인 무능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진심으로 사죄하고 투명행정을 펼치면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면 비판세력도 협력하는 태도를 취했을 것이다. 비판세력을 경계하고 제어대상으로 볼 게 아니라 함께 가야 할 세력으로 인정하는 게 올바른 태도다. 비판세력을 적대하는 정부는 결국 스스로가 썩고 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 점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유가족을 분리 대응하고 이를 통해 여론을 정부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태도는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보수단체를 앞세워 집회를 사주할 필요성을 강조한 대목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충격적인 발상이다. 박근혜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목표라고 했는데 ‘정상의 비정상화’를 추구한 사례가 바로 ‘보수단체를 동원한 집회 사주와 여론조작 계획’이다. 이후 극우 보수 성향의 친정부 단체인 어버이연합이 청와대 인사와 교감하면서 세월호 유족과 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전경련은 어버이연합에 5억이 넘는 ‘금은 자금’을 공급했다. 민간단체에 대한 정부의 집회 사주는 민주공화국 파괴행위이다. 민주주의는 여론을 통해서 운영되는 제도다. 여론을 조작하는 정부는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2년이 넘도록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행적도 모르고 사는 대한민국이다. 이런 정부가 독재정부다. 대통령이 당일 무엇을 했는지 확인하는 것은 진실규명에 매우 중요하다. 더욱 중요한 점은 당일 대통령이 왜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304명의 국민이 죽어가게 방치했나 하는 점이다. 당일 대통령은 직무를 포기했다. 헌법위반 탄핵사유다. 정부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사건 초기부터 사실상 포기했다. 지난해 9월에는 해수부가 세월호특조위 대응문건을 통해 대통령 조사를 막는 행동을 했고 지난 9월에는 새누리당이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한 연장 법안 상정을 국회법을 악용해서 저지시켰다. 아직 선체인양도 안 되었다. 선체는 잘해야 내년 상반기에나 인양될 거라고 한다. 핵심증거인 선체를 보지 않고 어떻게 진상을 규명하나? 야당은 다른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서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여당 의원들 가운데도 세월호 진상규명에 힘을 보태는 의원이 나와야 한다. 세월호 진상규명은 우리 시대의 피할 수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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