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7일 문재인 전 대표는 몇몇 원로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남재희씨는 하야, 탄핵 이런 말은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원로들은 산전수전 다 겪다 보니까 신중한 인생행보를 주문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문재인이 자신의 생각을 원로들의 입을 빌어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은 이번 하야·탄핵정국을 놓고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는 것 같다. 좌고우면의 연속이다. 신중한 건 필요하다. 하지만 매사 조심조심하다가 뒷북을 치는 사람에게 역사가 역할을 맡기는 경우는 없었다. 이전에도 문재인은 매사에 조심조심하고 국면이 정리 될 때에 이르러서야 말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세월호 때도 그랬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다. 결정적인 국면에서 ‘신의 한 수’를 둘 줄 모르는 인물은 평생 남의 뒤꽁무니를 따라 다니기 십상이다. 

‘하야정국’에서 문재인은 제일 먼저 ‘대안’을 내어 놓았다. 대통령은 탈당하고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라는 것. 우리 헌정사에서 한 번도 실현된 적도 없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 주장하는 사람, 듣는 사람마다 다 다르게 생각하는 동상이몽의 언어가 거국내각이다. 헌법학자 허영처럼 헌법 71조(대통령 궐위나 사고로 직무수행 할 수 없을 때는 총리 등이 권한을 대행한다)를 들어 지금 상황을 ‘대통령의 직무수행이 불가능한 사고’로 규정하고 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이도 있지만 소수의 견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이 유력한 대권후보의 한 사람으로서 대안을 내어 놓는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번 ‘하야정국’에서 거국내각 주장은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국민의 뜻을 정확히 표현하는 정치적 요구와 국정방향, 진상규명 방안 제시 없이 ‘제도’부터 꺼냈다는 점이다. 꼭 말해야 할 알맹이는 빼고 ‘제도’부터 불쑥 던짐으로써 박 대통령과 여권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고 본인 스스로의 운신의 폭도 좁히는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또 하야·탄핵정국이 활짝 열리면서 거국내각이 잘못된 방안이라는 게 드러났음에도 문제 있는 방안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어리석음에 또 다른 어리석음을 더한 것. 하야·탄핵정국이 활짝 열렸다는 건 이 땅의 대다수의 사회구성원이 ‘어떤 경우에도 박근혜라는 인물을 더 이상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 걸 뜻한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5~10% 머물고 20대, 30대의 지지율이 1%까지 내려가고 40대, 50대도 지지율이 3%까지 내려갔다. 지난주 30만명의 국민이 거리로 나와서 퇴진 또는 탄핵을 외쳤다. 법률적으로는 탄핵이 시도조차 되지 않았지만 국민은 이미 탄핵해 버렸다. 국민의 뜻을 받드는 게 정치지도자의 도리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문재인은 정치지도자의 본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민심과 괴리된 ‘구태의연한’ 행보를 하고 있다.  

야당이 ‘책임총리’와 거국내각을 주장하니까 박 대통령은 국회가 추천한 총리에게 내각 통할권을 주겠다고 했다. 헌법 86조 2항은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책임총리는 자신이 통치하는 틀 속에서 헌법 규정에 충실한 총리를 두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반성문의 일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대변인의 이름으로 대통령의 말이 모호하다면서 “대통령의 진의를 확인할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말하는 ‘통할’ 총리는 야당의 방안과 명백히 다르다. 박 대통령에게 물어 볼 필요가 없었다. 시간을 한참 허비하고 나서야 야3당은 대통령의 ‘통할총리’안을 거부했다. ‘통할권 부여 총리’를 말할 때 즉시 거국내각 방안을 철회했어야 마땅하다. 기회는 또 있었다. 일방적으로 김병준 총리와 일부 각료를 임명할 때였다. 자승자박의 ‘거국내각’ 방안을 두 번이나 철회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눌러앉아 부적절하고 비현실적이며 위헌논쟁을 야기할 수 있는 ‘거국내각’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게 민주당, 국민의당이다. 이건 하야, 탄핵을 외치는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이고 탄핵정국에 대한 물타기에 다름 아니다. 

현재 탄핵정국에서 박 대통령은 단순히 최순실의 아바타 수준을 넘어 나쁜 제도, 나쁜 체제의 상징이 되었다. ‘구악’을 체현한 인물과 그가 활개치고 다닐 수 있게 만든 구체제를 그대로 둔 채 사회를 개혁한 경우는 없었다. 이참에 구악을 양산한 인적 구성을 해체하고 구체제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문제의 거국내각 기조를 멈추지 않으면 박근혜 대통령이 뜻대로 하는 데 큰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적청산과 시스템 개혁이 물 건너감은 물론 야당은 집권할 기회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집권을 하더라도 ‘낡은 체제’를 연장하는 정권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민심은 천심이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탄핵민심을 거스르지 말고 민심에 순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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