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고 국정농단의 장본인이 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는 한때 성악가를 꿈꾸던 예능인이었다. 서울 경복초등학교와 선화예술중학교 때까지 성악을 전공했다.  정유라씨는 중학교 이후 갑작스럽게 승마선수로 진로를 변경했다. 성악을 갖고는 소질을 발휘하기가 힘들고 대학문을 두드리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아마도 최순실씨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한국의 예체능 입시를 누구보다도 잘 파악했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의 여러 인맥과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의 예체능 입시 요강 정보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대비했을 것이다. 성악에서 승마로 전환한 것은 큰 모험일 수 있으나 나름대로 자신감이 없으면 선택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성악은 학생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 두각을 나타내기 어렵지만 승마는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선수 수가 적어 대학가기가 대단히 용이하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승마는 ‘말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일반 학부모들이 자식의 대학진학을 위해 범접하기가 어려운 종목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고질적인 사회 문제로 지목되고 있는 대학입시에서 예체능은 다른 어느 부분 못지않게 치열하다. 전문 특기자 제도로 대학에 진학하려면 어릴 때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체능 특기자 혜택을 받아 대학에 들어가려면 ‘최근 3년간 국제 또는 전국 규모대회에서 3위 이내에 입상해야 한다’는 입시 요강이 적용된다. 일반 학생으로 예체능 대학에 가려면 일반 전형방법으로 엄청난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따라서 어릴 때부터 하지 않으면 예체능 특기자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게 교육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유라씨가 승마에서 장애물보다 마장마술을 선택한 것은 빠른 시간 내에 성적을 올릴 기 위한 전략이었다. 승마 장애물은 어려운 장애물을 통과해야 하고 운동선수로서 담력도 있어야 하나, 마장마술은 승마의 ‘체조’라고 불린다.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려면 선수보다는 말의 비중이 월등히 높은 종목이다.

정유라씨는 승마 마장마술을 시작한 지 1~2년 만에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덕분에 경기실적에 의한 체육특기자 전형으로 이화여대를 합격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성악보다는 승마를 선택한 것은 대학입시에서 성공할 수 있는 키포인트가 됐던 것이다.

정유라씨가 이화여대에서 입시비리와 수업 출석 특혜 시비가 일자, SNS에 “돈도 실력이야, 부모를 원망해”라는 글을 올려 학생들에게 거센 원성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승마 종목에서 많은 돈이 들어갔음을 인정한 셈이 됐다.

한국의 대학입시에서 예술과 체육을 ‘예체능’이라는 한 영역으로 묶어 대학입시를 치르고 대학에서 같은 단과대학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예체능이 사람의 오감을 이용, 인간에게 감흥을 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음악, 미술, 영화, 연극, 체육, 무용 등은 모두 인간에게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영감과 혁신을 가져다준다. 위대한 예술가와 운동선수를 보면서 다양한 감정이 생겨난다. 예체능은 사람들에게 뭔가 잘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문화학자들은 예체능이 사람들을 공동체의 규범에 들어가도록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본다. 예술과 체육이야말로 사람됨에 기여하고 사람들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체능을 바탕으로 삼아 문화적 에너지를 잘 발휘하면 삶 자체가 복되고 즐겁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5천만 국민이 ‘붉은 악마’가 돼 하나가 됐던 것을 굳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한국민은 ‘한과 흥’을 가진 민족으로서 예술과 체육을 좋아하고 아낀다.

성악과 승마를 왔다갔다하며 예체능을 입신의 발판으로 삼은 최순실씨 일가의 행태가 세인들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예체능의 순수성을 크게 해쳤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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